"콘돔 찾아오라고 시켰다" 상사 고소한 직원…회사에 무슨 일이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괴롭힘 신고·형사 고소에 2000만원 손배청구까지
고용부는 피해자 손 들어줬지만
법원 "휴가 다 써...콘돔 발언도 진위 불명"
"과격 발언 몇차례 했다고 불법행위 아냐" 뒤집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직원과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사이에 진술이 완전히 엇갈려 난감했던 인사담당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현장에선 고용청의 판단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고, 이에 근거해 회사도 징계를 내리게 되면서 그 판단과 징계 자체가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하거나, 일부 사실만 콕집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끈다.
○"나보고 콘돔 찾아오랬다"...2000만원 손해배상 청구
원고 A는 2017년 회사에 입사해 팀원으로 근무해왔다. B는 영업기술부 차장으로 A의 직장 상사다. A는 2020년 11월, B로부터 다음과 같은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을 당했다면서 회사 및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2019년 5월 회사 대리 직원과 고객사 소속 여자 대리가 회사 상담실에서 장시간 미팅 후 나오지 않자, B차장이 나와 다른 직원 G에게 "상담실에서 (성행위) 증거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B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G에게 "쓰레기통 뒤졌으면 콘돔이 나왔을 텐데. C 대리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2020년 9월 휴가를 내는 과정에서 B가 폭언을 하며 연차휴가 사용을 거부했다. 물 마실 때나 화장실을 가는 등 이동할 때 모든 상황을 보고하라고 하며 매일 일일업무보고를 요구했고, 중요한 회의 참석에 배제하고 중요 비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이 아니란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A의 신고로 사건을 접수한 부산지방 고용노동청은 달랐다. 회사에 "직장 내 성희롱이 인정되므로 B를 징계하고 A의 근무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린 것.
고용청 측은 또 "B가 A에게 병가 증빙 제출을 지시하거나 '하는 일 마다 맘에 안 든다, 회사에 놀러 다니냐,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지 무책임하다'라고 말하는 등 자유롭게 휴가를 못쓰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폭언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판단했다. 또 B가 A에게 '어디 쳐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어슬렁어슬렁 쳐다니네'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괴롭힘도 인정했다.
이에 회사도 결국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B의 '성희롱'을 인정하고 '감봉 3개월 및 근무 장소 이동'이라는 징계를 의결했다.
사건은 A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A는 한 발 더 나아갔다. B의 저평가 탓에 자신이 승진 탈락, 상여금 누락을 당하고 적응장애 등의 질병을 얻게 돼 장기간 휴직을 하게 됐다며 치료비 58만원과 요양기간 휴업손해 1380만원, 위자료 5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다. 또 B를 업무방해로 형사 고소까지했다.
○법원 "과격한 발언 몇차례 했다고 불법행위 아냐"
하지만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지난 3월 A의 청구를 기각했다. 비록 고용부가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판단했지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정도의 불법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2022가단131727).
먼저 성희롱으로 인정된 문제의 '콘돔'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부하직원 G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G는 "(B가) 증거를 찾았냐고 물어봐 '없었다'는 취지로 답변했을 뿐 B가 '콘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이다. 법원은 "G는 이미 퇴사해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며 "콘돔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B가 무조건 폭언만 한 것도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A가 고객이나 타부서와의 약속을 어긴 경우나 업무실수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꾸짖기만 하지 않고 '수고 많습니다,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으면 회신 주세요'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B가 휴가 사용을 막았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A가 몸이 안좋다는 이유로 당일 연차를 사용하거나, 새벽 5시 문자를 보내 "몸 상태가 안좋아 10시 출근할테니 참고하라"고 통지했음에도 B가 "알겠습니다. 컨디션 안 좋으면 쉬어도 됩니다"고 답장을 보낸 사실, 결과적으로 A가 신청한 연가가 반려된 적이 없고 총 연차 128시간 중 124시간을 사용했다는 점도 꼬집었다.
A가 일방적으로 당한 게 아니었고, B의 지적에 "제가 무슨 월권행위를 한다는 것인지 지나가는 애가 웃겠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이 차장님이 주동하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한 사실도 일방적 괴롭힘이 아니라는 근거로 들었다.
수사기관의 판단도 근거가 됐다. A의 고소를 접수한 수사기관은 '직속상사가 지시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 내의 행동으로, 일반인의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는 정당한 행동'이라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런 점을 감안해 "A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면 손해배상과 형사 고소를 병행하면서 회사와 가해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피해자의 주장을 위주로 수사할 수 밖에 없는 당국은 입증된 몇몇 발언만으로 괴롭힘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몇가지 발언 만으로 괴롭힘이 반드시 성립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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