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한 매력과 싼 티… ‘펄프 대한민국’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5. 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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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즈오 이시구로가 ‘팬심’을 공유하는 작가 중에 레이먼드 챈들러가 있다. 챈들러는 1930년대 이후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 그중에서도 탐정소설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까지 한 하루키는 초기 대표작 ‘빅 슬립’ 역자 후기에서 챈들러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챈들러에게는 훌륭한 문장력이 있었고, 펼쳐내야 하는 세계관이 있었다. 세계관은 제쳐두더라도(물론 꽤 흥미롭기는 하지만) 문장력은 실로 독보적이다. 인물도 정경도 무척 생생하게 그려져 마음에 남는다. 대화는 속 시원하고 곧잘 등장하는 비유는 재기발랄하다. 이야기의 흐름도 활기차게 움직인다. 다만 그런 능력에 비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거대한 이야기를 제로에서부터 시동해나가는 재능은 좀 약했지 싶다.”

나는 하루키와 이시구로에 대한 팬심 때문에 그들이 숭배하는 챈들러 대표작 두권을 어제오늘 읽고 있다. 후기 대표작 ‘기나긴 이별’에서 챈들러는 주인공이 커피 내리는 사소한 동작을 묘사한 뒤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움직임이 선명하고 대단히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무의식적인 행동조차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치르게 마련이다. 마치 소아마비를 앓고 나서 걷기 연습을 하는 사람과 같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당연시 할수 없다.”

주인공이 혼밥을 위한 저녁상을 차려내는 따위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하루키의 작풍이 어디에서 영향받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표현도 있다.

“법은 정의가 아니오. 몹시 불완전한 체계란 말이오.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고 행운도 좀 따라 줘야 간신히 정의가 실현될까 말까요.”

관념 따위에 한눈팔지 않고,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는’ 습관이 몸에 밴 하루키 소설의 캐릭터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챈들러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하루키는 그걸 더욱 충실하고 세련되게 구현하는 추종자처럼 보인다.

챈들러가 구사한 문장은 당대에는 아주 새로운 것이었고 지금 봐도 빼어나다. 문장이 빼어나다는 것은 많은 이미지와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챈들러의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내게는 그 주인공(필립 말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탐정)이 너무 전형적으로 뻔하게 느껴진다. 말로는 ‘돌아온 장고’처럼 고독한 사나이지만 수다스러울 만큼 말이 많고 시크함을 겨냥했을 대사에는 기름기가 잔뜩 끼어있다. 그가 남발하는 농담은 요즘 기준으로는 깐죽대는 것처럼 들린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잘난 척이다. 하루키도 “번역하다 말고 ‘음, 이렇게까지 쓸 일인가’ 하면서 팔짱을 끼게 되는 대목도 몇 군데쯤 있었다”고 역자 후기에서 썼는데 하루키가 그런 ‘오버’를 감지 못했을 리 없다.

챈들러가 창조한 주인공은 그가 창조한 참신한 문장과 달리 왜 뻔한가. 그것은 챈들러의 문학적 출발이 ‘펄프 매거진 ’이어서일 가능성이 있다. 펄프 매거진은 값싼 종이(펄프)를 사용한 읽을거리 중심의 대중잡지를 말한다. 주로 탐정물, SF, 공포소설로 채워지는, 한숨에 읽고 버리는 잡지가 20세기 전반기 미국 노동자층에서 인기를 끌었고 챈들러를 비롯한 가난한 무명작가들이 여기에 투고해 생활비를 벌었다. 펄프 매거진의 소설은 질보다는 양이고 정해진 스타일을 따라야 한다. 주인공의 전형성도 두드러진다. 필립 말로는 당시 미국 노동계급 남성이 선망했을 캐릭터를 답습하고 있다. 젠체하는 농담, 별 개연성없는 관심과 오지랖, 모든 여성들로 하여금 욕망하게 하면서 끝까지 신사로 남는 개연성 제로인 절제력, 기타 싼 티 나는 키치들...

G7 정상회의 확대세션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옵서버 자격으로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다녀온 이후 G8을 향한 한국 사회의 열망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마침 한국의 경제 규모가 올해 호주를 제치고 세계 8위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 사람들이 볼 때 기존 G7 국가 중 한두 국가 정도는 ‘우리가 저보다 못할까’하는 자만심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공급망과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으로만 치면 한국은 G7 아니라 G5로 행세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

집단으로서 한국인들의 교양력에 대한 자신이 나는 별로 없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남이 카페에 놓고 간 지갑을 들고 가지도 않고, 외국인에 친절하고, 절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고, 영어를 일본보다 잘하는 국민이다. 평균적으로 예능감도 좋다. 그런데 집단이 되면 무책임하고 부도덕해진다. 그 집단이 정치성을 띠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가짜 뉴스에 속고, 선동에 휘둘리는 정치 좀비들이 널려 있다. 정파 문제, 지역 문제,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팩트와 반증을 들이대도 소용없다. ‘헛소리 마라’. 많이 배워도 그렇고, 안 배운 이도 그렇다. ‘그냥 이렇게 살 것이다.’ 소설속 전형적인 꼰대 캐릭터처럼 변하지 않는다. 구제불능이다.

나는 지난 이틀 레이먼드 챈들러의 참신한 문장에 매혹되는 동시에 통속한 주인공 필립 말로의 싼 티 나는 전형성 때문에 입맛을 버리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지만 동시에 한심한 구석이 많다. 내가 아는한 G7 중에서 한국처럼 국민이 거짓에 잘 속는 나라는 없다. 걸핏하면 K 어쩌고 하면서 자의식 과잉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는 나라도 없다. 말하자면 싼티 나는 나라, ‘펄프 대한민국’이다. G8이 못될 것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교양력, 성정도 G8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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