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손 못 대는 동네 카센터, 굴욕인가 한계인가

윤정희 기자 2023. 5. 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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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전기차 시대 정비 산업의 초상
내연기관차 비해 정비 수요 낮아
수리 위해선 기술과 시스템 필요
동네 카센터 전기차 수리 불가능
인프라·미래차 교육 모두 미흡해
정비 산업의 재정비 필요한 시점

전기차 운전자들 사이에서 '수리'는 금기어에 가깝다. 기존 내연기관차와는 다른 특성 탓에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정비소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서다. 혹자는 "전기차를 타기로 결정했으면 응당 감수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무게추가 전기차로 옮겨간 이상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정비 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 직장인 김정민(36)씨는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 두시간 거리를 5년 전 구입한 전기차로 출근한다. 그런 전기차에 이상이 생기면서 정민씨는 때아닌 골머리를 앓았다. 집 근처 카센터는 물론 동네 이곳저곳에 있는 정비소를 찾아가도 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조차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군데가 넘는 정비소를 돌아다닌 끝에 가까스로 자동차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정민씨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차의 고장 원인을 밝히는 건 가능하지만 정작 수리는 불가합니다." 정민씨는 돌고 돌아 결국 집에서 멀리 떨어진 브랜드 직영 서비스센터에 차를 맡겨야 했다. 전기차의 뼈아픈 현주소다.

70만명의 전기차 운전자가 활동 중인 한 인터넷 카페에는 정민씨처럼 전기차 정비로 인해 골치를 앓는 회원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소모품 교체 같은 간단한 정비 빼곤 동네 카센터에서 가능한 수리가 없다"는 불만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공연히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건 아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4만5000여곳의 크고 작은 자동차 정비소가 있다. 이중 전기차를 수리할 수 있는 정비소는 1500~1600곳이다.

설사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정비소라고 해도 완성차 제작사의 직영ㆍ협력 서비스센터나 대형공업사 같은 종합정비업체가 대다수다. 동네 카센터가 주를 이루는 일반 정비업체 중 전기차를 고칠 수 있는 곳은 몇백개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자동차 정비소의 90%가 일반 정비업체란 점을 감안하면, 동네 카센터에서 전기차를 수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

이를 역으로 풀면,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동네 카센터의 설자리가 좁아질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원인은 간단하다. 먼저, 전기차 부품 수는 1만여개로 내연기관차의 3분의 1 수준인 데다 설계 구조도 단순하다.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간단하니 내연기관차보다 교체ㆍ수리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카센터 입장에선 일감이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으로 전기차는 소수의 전자제어장치(ECUㆍElectronic Control Unit)가 중앙집중형으로 구성돼 있어 소프트웨어를 통한 자동차 점검ㆍ수리가 원활하다. 카센터가 할 일을 '프로그램'이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

동네 카센터에서 전기차를 수리하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더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이 때문에 예전처럼 기술자들의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해 정비하는 게 어렵다. 전기차를 수리하려면 맞춤형 기술과 전문적인 정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네 카센터는 전기차 정비를 위한 인프라와 기술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

28년간 정비업에 종사한 김종남 영일사자동차공업사 대표는 "이를테면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고전압 배터리를 다룰 수 있는 정비소는 현실적으로 몇곳 되지 않는다"면서 "배터리를 탈부착하려면 광폭 리프트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6미터(m)에 달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이만한 시설을 갖춘 업체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문제를 짚은 조성준 카포스(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 차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하나의 팩 안에 여러 개의 모듈이 들어있고, 모듈은 다시 여러 개의 셀로 이뤄져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만약 셀 단위에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 전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고장난 부분만 수리해 차를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일반 정비업체에서는 불가능한 기술이다. 배터리에 이상이 생길 경우 완성차 제작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나 제작사의 협력업체를 찾는 수밖에 없다."

기댈 곳 없는 동네 카센터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앞으로 일반 정비업체들이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전기차 정비에 필요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수리 기술을 습득하는 거다.

다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프라 구축부터 살펴보자. 일선 정비소들이 때마다 출시되는 신차에 대응하기 위해선 완성차 제작사에서 수리 매뉴얼을 비롯한 정비 정보와 부품ㆍ장비를 제공받아야 한다.

문제는 해외 브랜드다. 공유 체계가 비교적 잘 마련돼 있는 국내 브랜드와 달리 해외 브랜드는 관련 내용이나 물품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있다. 2016년 완성차 제작사들이 일반 정비업체에 정보ㆍ장비를 제공하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 규칙이 시행됐지만, 해외 브랜드는 법망 밖에서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있다.

조성준 차장은 "해외 제작사는 자동차 키를 등록하는 데 필요한 핀코드를 넘겨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상通商에 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들며 부품이나 장비를 제공하지 않기 일쑤"라며 "내연기관차 정비 실태가 이런데 하물며 아무런 법적ㆍ제도적 가이드라인도 세워지지 않은 전기차는 어떻겠느냐"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령, 전기차에는 일종의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이란 장치가 있다. BMS에는 자동차 운행 이력 등의 정보가 담겨 있는데, 해외 제작사에선 '기업 고유의 데이터'란 이유로 이를 일반 정비소엔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이 때문에 일반 정비업체에선 전기차 정비는커녕 차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진단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상태를 점검하려면 스캐너에 BMS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제작사에서 이 정보를 차단하고 있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전기차 정비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정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미래차 전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 정비업체의 경우 교육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조성준 차장은 "정부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평일 열리는 데다 오프라인 교육장까지 접근성도 낮다"면서 "일반 정비업체는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교육에 참여하면 노동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 주도 프로그램의 품질마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필수 대림대(미래자동차학) 교수는 "지역별 거점 대학을 지정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교수진의 95%가 내연기관차를 전공했기 때문에 교수부터 전기차 교육을 시켜야 할 판"이라면서 "인스트럭터(강사) 양성이 되지 않아서 가르칠 사람이 태부족인데 전기차 정비 교육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정비 산업에 소홀한 정부

한마디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건데,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에 정책 시정을 건의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기도 여의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자동차 정비업이 국토교통부(자동차관리법 관장) 환경부(친환경차 담당) 산업통상자원부(제조업 담당) 고용노동부(직업 훈련 담당) 등 여러 주무 부처에 걸쳐 있는 탓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정비 단체에서 각종 문제를 해소하려 해도 각 부처에선 '우리 소관이 아니니 다른 부처에서 해결하라'며 일을 떠넘기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에는 힘을 쏟고 있으면서 전기차 생태계의 필수 요소인 사후관리(AS) 분야는 등한시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면 동네 카센터는 다 죽어버리고 완성차 제작사가 직영ㆍ협력하는 소수의 정비소만 남아 소비자들의 선택권만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 어떤가. 보다시피 자동차 정비업계는 지금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있다. 전기차 시대에 정비소들이 생존하기 위한 기술적 역량, 정비 환경, 제도적 토대 그 어떤 것도 준비돼 있지 않다.

그럼 정부의 관심조차 뜨뜻미지근한 상황에서 정비업계는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까. 일반 정비업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카포스'에선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차의 형태는 단순해지고, 그 안에 탑재하는 기술은 고도화하면서 앞으론 정비의 개념도 달라질 거다. 단지 기계장치를 뜯어 고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동차의 정보를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차 상태를 진단하는 '데이터 리딩'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려면 정비업계도 병원처럼 역할 분담을 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1~3차 기관으로 나눠져 있듯 정비소도 단계별로 분류하는 거다. 이를테면 동네 카센터가 1~2차 정비소가 돼서 전기차 진단을 전담하면, 수리는 2~3차 업체들에서 나눠 맡는 식이다."

지금이야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보다 압도적으로 많다지만, 그렇다고 정비업계의 제언을 나중의 일로 미뤄둬선 안 된다. 전기차 보급 대수가 늘어날수록 사후관리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건 불 보듯 뻔해서다. 산업의 쇠퇴와 소비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비 산업의 재정비'를 향한 첫걸음을 떼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적기일지 모른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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