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은둔청년 다온이가 6년만에 집 밖에 나왔다

이지현 기자 입력 2023. 5. 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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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사는 것 같지 않았죠.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거였어요. 막막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자기 전까지 들었어요.”

다온(가명·28) 씨는 몇 달 전까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고립·은둔 청년이었습니다. 극심한 우울감에 잠에서 잘 깨어나지 못했고, 깨어 있는 시간은 주로 휴대폰을 보면서 보냈습니다.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26일 서울 은평구 '두더집'에서 만난 다온(가명·28)씨가 JTBC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지현 기자〉
다온 씨의 부모님은 다온 씨가 초등학생일 때 이혼했습니다. 다온 씨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화가 나면 모든 것을 다온 씨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와의 관계는 좋지 못했죠.

겨우 학업을 마치고 성인이 돼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심한 우울증 때문에 6년 전쯤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고립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생활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꽤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외출은 꼭 해야 할 때만 했는데, 그때도 되게 무서웠어요.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두려웠거든요.”

좁은 방에서 나온 청년들…“저도 남들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여전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 들어가면 '아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든요.”

몇 달 사이 다온 씨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SNS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고립·은둔 청년 모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찾는 곳은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두더집'입니다. 사단법인 씨즈에서 운영하는 고립·은둔청년 활동 공간이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요리를 하고, 대화 모임,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고립·은둔청년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고 활동할 수 있도록 평범한 단독주택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두더집'에서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함께 요리하고 밥을 나눠먹는 점심밥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이지현 기자〉
'무기력하다, 게으르다, 의지가 없다'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편견과 달리 일부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속마음을 이야기하며 관계 맺는 법을 다시 익히기도 하죠.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제가 가장 힘든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힘든 사람도 있더라고요. 제가 너무 좁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A 씨

“청년들이 고립·은둔하게 되는 이유는 모두 다 다르고, 은둔의 아픔은 남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은둔 그 자체보다도 은둔에 대한 2차 가해나 폭력적인 말들 때문에 더 고통받았던 것 같아요.” - 김여물 씨(가명)

다온 씨 역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제가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남과 다르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거다' 생각했어요. 근데 나와서 활동하면서 '아 그래도 나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저를 되돌아보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출퇴근하고 그런 거요. 아직 정한 건 없지만, 마음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작은 거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때 가슴이 뛰더라고요.”

고립·은둔 청년들이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지현 기자〉

장기화하는 청년 고립 막아야…“꾸준한 지원 사업 필요해”



현재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은 2021년 기준 53만 8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하지만 이마저도 '추산'일 뿐, 아직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실태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 사업도 민간 차원에서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씨즈처럼 민간단체들이 고립·은둔 청년들을 발굴하고 사회로의 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그나마도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주로 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어 다른 지자체에 사는 고립·은둔 청년은 참여할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올해 들어 보건복지부가 고립·은둔 청년을 새로운 복지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고, 서울시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심리 상담과 일 경험 지원 등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혹자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왜 도와줘야 하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있었어요. 왕따를 당한 청소년들이 학교에 안 갔는데, 그땐 그걸 청소년 문제로만 봤었죠. 초기 관심도 부족했고요. 지금 그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중·장년층이 됐는데, 노인이 된 부모를 학대하거나 동반자살하는 등 사회 문제가 드러나고 있어요. 일본에서도 히키코모리 문제 해결이 성공적이었냐고 물으면 부정적 답이 돌아오죠.”

고립·은둔 청년을 오래 방치하면 중·장년층의 고독, 고립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김영호 씨즈 고립청년지원 총괄팀장은 그런 점에서 '꾸준한 지원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심리적 문제 때문에 혼자서는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스스로 낙오자, 패배자라고 생각하다 보니 불안감이 상당히 높죠. 그런데 상담해보면 청년들 대부분이 그냥 출근하고, 주말에 쉬고, 연애하는 '평범한 삶'을 꿈꿔요. 그 친구들에게는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 사업과, 거기에 본인이 참여해서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거거든요. 그러니 한시적으로 하고 끝나는 지원 사업 말고, 지속되는 지원책이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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