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목동에 있고 강남엔 없다고?...이게 도대체 뭐길래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3. 5. 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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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4]
‘신탁 방식’ 정비사업 쉽게 보기

‘○○아파트 신탁방식 재건축 주민설명회’

요즘 노후 단지가 모여 있는 동네를 가면 이런 문구가 써진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재개발을 해보면 어떨까 고민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보니 설명을 먼저 해달라고 신탁사에 요청하는 곳이 많다고 해요.

1980년대 지어진 아파트가 많은 서울 목동과 노원에서 특히 설명회가 자주 열리고 있습니다. 양천구 목동14단지, 신월시영아파트와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이미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입니다. 1970년대 준공된 반백살 아파트가 많은 여의도에선 공작·광장·시범·한양아파트 등이 신탁 방식을 택하고 있죠. 어떤 방식일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신탁 방식이란?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보통 주민들이 직접 ‘조합’을 만들어 추진합니다. 주민 투표로 뽑힌 조합장이 사업 전반을 이끌게 되죠. 신탁 방식은 이런 조합 방식과는 다릅니다. 신탁 방식은 ‘부동산 신탁사’란 기업에게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맡기는 방법입니다. 제3자인 신탁사가 설계도를 그리고, 사업비를 구하고, 시공사를 뽑는 등 대부분 과정을 진행하는 겁니다.
하나자산신탁이 맡은 대구 내당시영아파트 재건축 조감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신탁사가 총 14개 있습니다. 가나다순으로 △KB부동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대신자산신탁 △대한토지신탁 △무궁화신탁 △신영부동산신탁 △신한자산신탁 △우리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코리아신탁 △하나자산신탁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등입니다.
2. 신탁 방식 종류 2가지는?
신탁 방식은 조합이 없느냐, 있느냐에 따라 크게 2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사업시행자 방식과 △사업대행자 방식입니다. 먼저 사업시행자 방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재건축·재개발 절차를 보면 정비구역 지정을 받은 후엔 ‘누가 이 사업을 이끌고 갈 것인가’를 정하게 됩니다. 조합 방식 또는 신탁 방식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 겁니다. 이때 아예 조합을 만들지 않고 신탁사를 뽑아 사업을 맡기는 걸 ‘사업시행자 방식’이라 합니다.

신탁사를 뽑았다고 바로 사업을 맡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공식 지정되기 위해선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재건축이라면 아파트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동의가 필요합니다. 주민 갈등이 있다면 신탁 방식도 추진이 어렵겠지요. 동시에 전체 토지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 등기해야 합니다. 전체 토지의 33% 가량은 등기부등본 상 명의가 신탁사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 2가지 종류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신탁사는 비로소 사업시행자 지위를 얻게 됩니다. 시공사를 선정하고 건축 심의를 받는 등 후속 절차를 신탁사가 이끌게 되는 거죠. 물론 신탁사가 모든 걸 결정하진 않습니다. 주민들도 ‘정비사업위원회’란 대표 기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정비사업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서 하게 됩니다.

이미 조합을 만들었는데 신탁 방식을 택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이때 주로 선택하는 게 ‘사업대행자 방식’입니다. 조합이 있기는 해도 신탁사가 자금 관리 등을 도맡습니다. 신탁사가 사업대행자가 되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요건을 지켜야 합니다. 토지 등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고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 등기해야 하죠. 조건이 갖춰진 후에야 공사 발주, 관리, 운영 등 대행이 가능해집니다.

3. 장점은?
조합 방식이나 신탁 방식이나 주민 동의를 많이 얻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신탁 방식을 고민하는 사업장이 왜 늘어날까요. 가장 큰 이유로는 전문성이 꼽힙니다. 주민들이 모여 만든 조합보다는 상대적으로 신탁사가 전문적이지 않겠냐는 겁니다.

정비사업이 처음인 조합이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주민 갈등이 생기기 쉬운데 이를 막을 수 있단 계산입니다. 비리나 내분 문제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멈춰선 곳이 꽤 많거든요. 부동산·금융 전문가가 투입되면 이런 위험 요소를 줄여 사업을 빨리 추진할 수 있다는 거죠. 특히 준공 50년이 넘어 재건축이 시급한 여의도 노후 단지들은 빠른 속도를 기대하고 신탁 방식을 택한 곳이 많습니다.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여의도 공작아파트 전경
나중에 시공사와 협상을 할 때도 전문가가 있는 게 낫다는 판단입니다. 자금 조달이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조합 방식은 초기 자금을 모으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시공사를 선정하기 전에는 자금난 때문에 사업이 느리게 가기도 합니다. 시공사를 뽑아도 공사 단계까지 나아가는 동안 대출이 계속 쌓입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 대출 규모도 늘어나는 식입니다.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빚어 사업이 지연되면 추가 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죠.

반면 신탁 방식은 신탁사가 직접 자금 조달을 책임집니다. 기업이기 때문에 자체 자금과 신용이 있습니다. 아예 금융업체를 모회사로 둔 신탁사도 여럿입니다. 덕분에 사업비 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사업성이 좋지 않은 재건축·재개발 현장이 신탁 방식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 단점은?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단점으로는 높은 수수료가 거론됩니다. 보통 신탁사가 받는 수수료는 총 분양대금의 2~4% 수준입니다. ‘신탁 방식이 그렇게 좋으면 강남에선 왜 찾아보기 힘드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땅값이 비싼 강남은 분양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분양가격에 영향을 받는 수수료도 당연히 다른 지역보다 많이 책정되겠죠. 사업성이 좋아 어차피 굴러갈 텐데 굳이 높은 수수료를 내야 하느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신탁 방식은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제도입니다. 아직 ‘표준 계약서’도 없는 상황이에요. 신탁사마다 계약 조건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중도 해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계약서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지 하려면 토지 등 소유자 전원이나 80% 이상 동의를 받아오라는 식입니다.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 등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습니다.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등기부등본에 소유권이 신탁사로 표시되니까요. 물론 신탁법에 따르면 신탁 재산은 강제로 처분할 수 없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예외 사유도 존재하긴 합니다. 계약서에 각종 단서가 달리면 해석이 분분해질 수도 있죠.

신탁 방식도 갈등이 있긴 매한가지입니다. 신탁사가 사업 전반을 이끄는 만큼 주민 의견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신탁사와 주민 간 갈등이 생기면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겠죠. 조합 방식과 속도가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는 겁니다. 신탁사가 태업을 하거나 사업이 지연될 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도 모호합니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만큼 각자 사업에 어떤 방식이 더 잘 맞는지 세심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 부동산 이기자는 도시와 부동산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풀어주는 연재 기사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생긴 진입 장벽, 한번 ‘이겨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초보 투자자도 이해할 수 있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루겠습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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