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그림 그려 물리방정식 푸는 카파렐리 교수, 2023 아벨상 영예
수학상 하면 필즈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텐데요. 수학자에게 어떤 상을 가장 받고 싶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수학계 노벨상 ‘아벨상’을 꼽습니다. 필즈상이 앞으로가 기대되는 만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라면, 아벨상은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은 수학자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지요. 358년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가 아벨상을 받았습니다.
2023년 아벨상 수상자는 편미분방정식(PDE) 연구 분야의 살아있는 전설 루이스 카파렐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수학과 교수입니다. 헬게 홀든 아벨상위원회 위원장은 “카파렐리 교수는 PDE 문제에 새로운 기하학적 방법론을 제시해 이 분야를 발전시켰다”고 3월 22일 아벨상 홈페이지를 통해 수상 이유를 전했습니다.
PDE는 각각의 변수들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변화량을 볼 수 있는 방정식으로, 유체역학, 전자기학 등 활용 범위가 다양합니다. 카파렐리 교수는 얼음과 물의 경계, 유체의 흐름, 최적 운송 계획법을 구하는 수학적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가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벨상은 2002년 노르웨이 의회가 노르웨이의 천재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입니다. 전 세계 명망 있는 수학자 5인으로 구성된 아벨 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고 심사해 선정합니다. 올해 아벨 위원회에는 황준묵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소기하학 연구단장이 참여했는데요. 우리나라 수학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카파렐리 교수의 업적 BEST 3
카파렐리 교수가 PDE 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발표한 연구들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18 필즈상 수상자 알레시오 피갈리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피갈리 교수의 업적은 ‘최적 운송 이론ʼ의 문제에서 성과를 낸 것과 ‘슈테판 문제ʼ의 해답에 더 다가선 것인데요. 이 모두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카페렐리 교수가 어떤 수학적 성과를 냈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볼게요.
● 업적 1. 최적 운송 계획법을 진전시키다
최적 운송 계획법은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대량의 물자를 이동시킬 때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예컨대 강원도 채석장에서 서울의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대리석을 옮겨야 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려면 최단 시간에 가장 짧은 경로로 가야 하는데요. 이를 알려주는 함수를 PDE로 찾는 거죠.
최적 운송 계획법을 찾으려면 ‘몽쥬-앙페르 방정식(PDE)’을 이용해야 한다는 프랑스 수학자 얀 브레니어의 결과를 바탕으로, 카파렐리 교수는 이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 결과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기후 전선의 이동을 예측하는 기상학 연구에도 쓰입니다.
● 업적 2. 녹는 얼음의 특이점을 찾았다! 슈테판 문제
1889년 슬로베니아 물리학자 요제프 슈테판은 얼음이 녹는 현상을 PDE 2개로 표현했어요. 하나는 따뜻한 물에서 차가운 얼음으로 열이 확산하면서 얼음이 녹는 현상을 설명해요. 다른 하나는 얼음이 녹는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얼음과 물 사이의 경계 변화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이 2개의 PDE는 실제 얼음이 녹는 실험의 결괏값과도 잘 들어맞았지요.
그런데 슈테판은 얼음과 물 사이의 경계에 ‘특이점’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를 밝히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슈테판 문제가 나왔습니다. 특이점은 PDE를 포함한 어떤 수식을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뾰족하게 생긴 지점으로, 이 지점에서는 미분이 불가능해요.
1977년 카파렐리 교수는 슈테판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마련합니다. 얼음과 물의 경계의 변화를 돋보기처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 결과 얼음이 물이 되는 0℃에 특이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또 특이점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내는 방법도 고안했지요. 이 방법을 이용해 2021년 피갈리 교수팀은 특이점이 매우 드물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 업적 3.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실마리 제시하다
카파렐리 교수는 100만 달러(한화 13억 1900만원)의 상금이 걸린 밀레니엄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에서도 업적을 남겼어요. 이 식은 끈적끈적한 점성을 포함한 유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특이점이 있다면 정확한 움직임을 알 수 없어 특이점이 있는지 밝히는 게 중요해요.
1982년 카파렐리 교수는 공동 연구자와 함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원래 해인 함수에 특이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특이점이 있다면 이것들을 모았을 때 선을 만들 수 없을 만큼 매우 작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독창성의 비결은 독학
“PDE는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70년대부터 카파렐리 교수와 자주 연구한 산드로 살사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크대 명예교수가 한 말입니다. 카파렐리 교수의 연구 결과들이 PDE 연구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고 평가한 건데요. 놀랍게도 카파렐리 교수는 PDE를 박사 졸업 후 알게 됐고, ‘독학’했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카파렐리 교수는 모국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습니다. 함수를 연구하는 해석학을 전공한 그는 1973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합니다. 그때 2차 선형 PDE 연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한스 레비 교수의 조화 분석 강의를 듣습니다. 조화 분석은 함수와 주파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PDE를 이용하지요.
새로운 강의 내용에 완전히 매료된 카파렐리 교수는 레비 교수에게 찾아가 PDE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고, 레비 교수는 얼음과 물처럼 그 경계가 자유롭게 변하는 ‘자유 경계 문제’ 2개를 추천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랐던 그는 혼자서 오래전 논문부터 찾아가면서 공부했지요.
그렇게 4년이 지난 1977년, 현재는 그의 대표 업적이라 불리는 슈테판 문제의 실마리를 제시해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수학계에서는 그의 논문을 두고 PDE 문제를 기하학적으로 접근한 독창적 연구라고 평가했는데요. 2008년 대만국립대학교 수학과와의 인터뷰에서 카파렐리 교수는 이러한 결과가 “혼자 공부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2021년 피갈리 교수와 함께 슈테판 문제 관련 논문을 발표한 자비에 로스 오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교수는 “2014년부터 슈테판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카파렐리 교수님의 연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어요.
살사 교수는 1978년 공동 연구했던 때를 회상하며 “대개 다른 수학자가 푸는 방식을 따라서 풀기 마련인데 그는 완전히 자신만의 기하학적 관점과 방법으로 PDE를 풀었다”며, “필즈상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고 그의 수학적 직관이 남달랐다고 설명했습니다.
○ 제자가 말하는 카파렐리 교수 위대한 수학자이면서 위대한 스승
"카파렐리 교수님은 마치 탐정 같았어요"
1994년부터 뉴욕대에서 박사과정생으로 있을 때 지도 교수님인 카파렐리 교수님으로부터 세 가지를 배웠어요. 먼저 수학 문제를 그림과 간략한 계산으로 접근하는 방법이에요. 보통 PDE 문제는 수식을 푸는 걸로 공략하지만, 교수님은 기존 방식과 달리 먼저 칠판에 관련 그림을 몇 개 그려놓고, 토론부터 했지요. 세세한 방정식 계산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림과 대략적인 계산 몇 개를 바탕으로 마치 탐정처럼 추론해 해답까지 도달했어요.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거죠. 덕분에 분명한 방향으로만 고민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음은 교수님께 집요함을 배웠어요. 그림을 그려 대략적인 방향을 정한 다음엔 추론이 맞는지 하나하나 실제로 계산해봐야 해요. 당시 제가 교수님께 매일 찾아가서 ‘잘 안 됩니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교수님과 같이 논의하면서 이렇게 풀까, 저렇게 풀까 고민했어요. 정말 신기한 점은 문제를 풀고 보면 교수님이 처음에 그림과 대략적인 계산만 보고, 추론했던 결론이 모두 맞았어요. 교수님이 정말 집요하게 문제에 파고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은 책임감입니다. 항상 제자들을 신경 써주세요. 뉴욕대에서 텍사스대로 옮기실 때는 장학금을 마련하여 모든 뉴욕대 제자들을 방문 학생 자격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카파렐리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저도 교수님께 배운 것을 제 제자들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카파렐리 교수님은 저보다 언제나 발걸음이 빠르셨어요. 축구도 굉장히 잘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연구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카파렐리 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제 생애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예요. 아이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설렜지요.
저는 1990년대 후반 브라질 세아라연방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저명한 수학자가 총집합한 미국에서 수학 연구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상황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1999년 저는 브라질 순수 및 응용 수학 연구소(IMPA)에서 열리는 수학 총회에 참가했고, 카파렐리 교수님이 연사로 오셨어요. 그때 교수님께 미국에 가고 싶다는 제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텍사스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지원해봐라”고 했고, 용기를 내서 지원했어요. 그 결과 정말로 합격해서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수학 연구뿐만 아니라 됨됨이까지 제게 큰 영향을 끼친 카파렐리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카파렐리 교수님은 많은 젊은 수학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남미 지역의 여러 수학 행사에서 강연을 해주셔서 미래 세대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해요.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은 완벽해요!"
1993년 봄, 제가 뉴욕대 박사과정생일 때 지도교수님이신 2015 아벨상 수상자 루이스 니렌버그 교수님은 카파렐리 교수님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제가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카파렐리 교수님과 공동 저자로 전공 서적을 내자는 거였지요.
니렌버그 교수님은 “카파렐리 교수님이 수업에 완전히 몰입하면 말이 점점 빨라지니까 필기를 위해 중간에 멈춰달라고 꼭 말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지요. 그렇게 저는 카파렐리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정리했어요.
이후 강의에서 나온 정리, 명제 등의 순서를 정확히 따라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을 다 쓸 무렵, 첫 장부터 끝장까지 아무것도 추가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아주 감탄했어요. 교수님이 강의를 정말 정교하고 완벽하게 설계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카파렐리 교수는 남미 최초 아벨상 수상자입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에서 수학자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큰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우르슬라 몰터 아르헨티나 수학회 회장은 “카파렐리 교수님의 아벨상 수상은 미래 세대의 아르헨티나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카파렐리 교수는 오는 5월 23일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아벨상 트로피와 함께 상금 750만 크로네(한화 9억 4000만원)를 받습니다. 시상식 기간 카파렐리 교수 연구에 관한 강연이 열리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벨상 유튜브 계정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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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5월호, 2023 아벨상 , 복잡한 물리 방정식 그림 그려 푸는 루이스 카파렐리
[손인하 기자 cown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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