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끼리, 남자끼리 생명을 만들 수 있을까
지난 3월 한 실험실에서 생쥐 7마리가 태어났다. 이들의 생물학적 아빠는 둘. 엄마는 없다. 두 아빠 생쥐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인간도 동성 커플간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연구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암컷 홀로 번식을 하는 척추동물들이 있다.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에 서식하는 채찍꼬리도마뱀 일부 종은 수컷이란 성별 자체가 없다. 암컷끼리 번갈아 가며 수컷 역할을 한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보통 암수 짝짓기를 통해 번식하지만, 암컷만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선 암컷 홀로 생식을 한다.
2021년 10월에는 멸종위기 조류 중 동성생식이 최초로 확인됐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연합은 캘리포니아 콘도르가 무정란에서 새끼를 부화시켰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의 관심은 이제 포유류를 향한다. 포유류도 동성생식이 가능할까. 적어도 실험실에서는 가능하다.
최근 하야시 가쓰히코 일본 규슈대 교수팀은 수컷 생쥐 체세포로부터 만든 난자를 다른 수컷의 정자와 수정시켜 새끼를 탄생시켰다. 연구 결과는 3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3차 유전자 편집 국제회의에서 발표됐고, 같은 달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doi: 10.1038/s41586-023-05834-x) 두 암컷 사이에서 생쥐가 태어난 사례는 2004년 이미 있었지만, 두 수컷 사이에서 건강한 새끼가 태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유동물 동성생식에 대한 연구는 꽤 이전부터 이뤄져왔다. 두 암컷 생쥐 사이에서 새끼를 태어나게 한 최초의 연구는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정선 전 서울대 의대 교수(현 마크로젠 회장)와 고노 도모히로 일본 도쿄농대 교수 등 한일 공동연구팀은 난자만으로 생쥐 새끼를 만들고 2004년 4월 22일자 네이처에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38/nature02402)
당시 연구진은 포유류에서 동성생식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각인(imprinting)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각인 유전자는 ‘동시에 발현되면 충돌이 생겨 성장에 문제가 생기는 유전자 쌍’을 뜻한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한쪽만 발현되도록, 다른 한쪽의 DNA에 메틸기(CH3-)를 붙여 ‘각인을 새기는’ 방식으로 스위치를 끈다. 연구진은 이러한 각인 유전자를 찾아내 없애면 동성생식이 가능해질 것으로 봤다.
연구진은 암컷의 각인 유전자를 특정해냈고 동성생식에 성공했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부단장은 이에 대해 “포유류에서 동성생식이 불가능한 핵심적인 안전장치를 찾아낸 것이고 각인 유전자라는 빗장을 풀기만 하면 동성생식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첫 연구”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정상적인 암컷 사이의 생식이 아니었다. 각인 유전자 중 13kbp(킬로 베이스페어는 1000개의 염기쌍)가 사라진 돌연변이 암컷의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구 부단장은 “13kbp의 DNA면 상당히 많은 유전자 염기서열이 잘려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인간에 적용하기엔 윤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모두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 수컷 동성생식은 난이도 높다
2018년에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갔다. 중국과학원 동물학연구소 연구팀이 두 암컷의 유전자를 편집해 건강한 새끼 생쥐를 탄생시켰다. 새끼는 생식 능력도 있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에 발표됐다. doi: 10.1016/j.stem.2018.09.004 2004년 연구와 비교해 보면, 이들은 암컷 사이의 생식을 방해하는 각인 유전자를 하나 더 찾아내 모두 3개의 각인 유전자를 다른 유전자로 편집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유전자를 정교하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인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가위’도 개발돼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을 더 정교하게 실행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수컷 동성생식도 연구했다. 수컷 사이의 생식을 방해하는 각인 유전자 7개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생식을 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생쥐는 생존율이 낮았고, 성체가 되기 전에 모두 죽었다. 수컷 동성생식이 암컷보다 더 어려운 이유는 뭘까. 구 부단장은 “수컷끼리의 생식은 빗장을 풀어야 하는 각인 유전자가 7개나 되고, 이를 모두 돌연변이시켜야 해서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2018년 연구 역시 돌연변이에 의존한 것이 한계”라고 덧붙였다.
● 불임과 난임 치료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
2023년 하야시 교수팀의 연구는 정상 수컷 생쥐 2마리로 생식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성과가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야시 교수팀은 각인 유전자를 편집하는 대신 아예 수컷의 체세포로부터 난자를 만들었다. 보통 성염색체가 XY이거나 X 하나만 있는 경우 난모세포(2n)를 난자(n)로 만드는 여성의 감수분열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야시 교수팀은 수컷 생쥐의 체세포로부터 XX 성염색체를 갖는 난모 세포를 만들어 별도의 유전자 편집 없이 난자를 생산했다.
하야시 교수팀은 수컷 생쥐 체세포에서 난자를 만들기 위해 두 단계를 거쳤다. 우선 수컷 생쥐 꼬리 끝에서 섬유아세포를 채취하고 이를 역분화시켜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iPS 세포는 XY 성염색체를 갖는다.
연구팀은 해당 iPS 세포를 빠르게 배양하고 복제하는 과정을 반복해 성염색체 중 우연히 Y가 사라진 iPS 세포를 찾았다. 여기에 염색체 복제 오류를 내는 리버신을 투입해 X만 남은 성염색체를 복제해 XX로 만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리버신을 아주 약한 농도로 적절히 사용하면 오직 성염색체만 두 배로 복제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수컷의 난모 세포는 각인 유전자를 편집할 필요 없이 여성의 감수분열을 거쳐 난자가 된다. 연구팀은 이 난자와 정상 수컷의 정자를 체외수정한 뒤 대리모 생쥐를 이용해 건강한 생쥐들을 탄생시켰다. 두 생쥐 사이의 교배라 유전병 문제에서도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야시 교수는 이번 두 아빠 생쥐 연구를 사람의 불임과 난임 치료를 위해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X 염색체가 부분적으로 결여돼 난소에 기능장애가 생기는 유전질환인 터너 증후군 여성의 난임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낮은 농도의 리버신을 적절히 활용하면 다른 상염색체는 건드리지 않고 성염색체만 복제할 수 있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 인간도 동성생식 가능할까
생쥐에서는 생물학적 엄마가 둘, 혹은 아빠가 둘인 새끼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고 잘 자라났다. 혹시 인간에서도 동성생식이 가능할까. 하야시 교수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간 남성의 세포로도 10년 안에 비슷한 성과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 부단장 역시 “기술적으로는 10년도 안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다.
인간 대상 실험에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있다. 윤리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18년 허젠쿠이 전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는 윤리적 논의 없이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켰고 징역 3년형을 받아 복역했다.
한국은 인간 배아를 활용한 연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인간을 대상으로 iPS 기술을 이용한 동성생식과 관련해서는 법에 명시된 내용이 없다. 이에 대해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며 “생명윤리법 입법 취지를 생각했을 때, iPS 기술을 이용해 동성 간 생물학적 출산이 가능할지는 안전성, 사회적, 윤리적 측면 모두 신중하게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생식이 실제로 논의된다면 사회적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까. 동성생식은 아니지만 동성혼 문제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거치는 국가들이 있다. 2021년 프랑스에서는 비혼여성과 레즈비언 커플 등에게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지원해주는 법이 통과됐다. 프랑스 국민 67%가 법안에 찬성했지만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대규모 반대 시위대가 파리 주요 도로를 장악하고 ‘아버지는 어디 있니?’라는 피켓을 들었다. 동성 간 생물학적 아이를 출산하는 일 역시 뜨거운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 교수는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 나라의 민주적 의사결정의 수준을 보여준다”며 “한국도 과학기술로 야기되는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1991년 설립된 영국의 너필드 생명윤리위원회는 윤리적 우려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미리 발굴한다. 시민들은 검토할 주제를 직접 선택하고 대중 참여 워크숍이나 공개토론 등에 참여한다. 덴마크의 기술위원회, 노르웨이의 기술위원회, 네덜란드의 라테나우 연구소 등도 생명윤리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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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린 기자 surin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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