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가 된 황금 소년의 비밀

이병구 기자 2023. 5. 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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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 귀족 ‘네시멘드잠’의 관과 미라. 열린 관 안에는 미라가 일부를 붉게 염색한 천으로 감겨 있다.

화려하고 거대한 관 안에 미라가 보여요! 수천년 전 고대 이집트의 고위 귀족입니다.
미라에는 어떤 한 사람의 일생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사가 담겨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미라가 품은 비밀을 더욱 많이 알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도 다양한 미라가 발견되고 있는데요, 오싹하고 신기한 미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혀까지 황금?! 이집트 미라 '황금 소년'

최근 100년 넘게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지하에 있던 황금 미라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관을 열지 않고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서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들어 있던 부장품들을 속속들이 알아냈다는데요. 

메인 관. Sahar Saleem

● 관을 열지 않고도 미라 사진을 찰칵!

올해 1월 이집트 카이로대 영상의학과 사하르 살림 교수팀은 1916년부터 카이로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미라가 있는 관을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분석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CT는 X선으로 물체를 투시해 분석하는 방법이에요. X선은 물질의 종류에 따라 투과되는 정도가 달라 미라가 들어 있는 관을 직접 열지 않고도 관속을 분석할 수 있어요.

분석 결과 관속에 들어 있는 미라의 모습과 신원은 물론 미라 주변에 있는 물건들도 확인했어요. 총 49개의 부적이 발견되었고 그중 30개는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런데 미라 옆에 왜 이렇게 많은 부적이 들어 있을까요.

CT 촬영 중인 ‘황금 소년’ 미라의 관.Sahar Saleem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사후세계로 떠난다고 믿었다”고 말했어요. 이어 “영혼이 사라지지 않고 여정을 떠나기 위해 현실 세계에 영혼을 담는 그릇인 미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안전하게 사후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미라 옆에 황금이나 보석처럼 귀한 재료로 만든 부적과 샌들 등 부장품을 함께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라의 입속에서는 황금으로 만든 혀도 발견됐어요. 사후세계로 떠나는 영혼은 중간에 저승의 신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데, 이때 이야기를 잘 하라는 뜻에서 황금 혀를 넣어준 것이죠.

살림 교수팀은 분석한 미라가 어린 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CT 촬영을 통해 치아가 발달된 정도와 성장판을 분석한 결과지요. 곽 소장은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미리 자신의 장례를 준비했다”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가족들이 대신 장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전에도 파라오 ‘세케넨레 2세’ 등 많은 미라를 분석해온 살림 교수는 “CT 촬영으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하면 3D 프린터 등으로 미라와 관 속 물건들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CT 촬영을 통해 미라를 관 표면부터 미라 속까지 층별로 분석했다.Sahar Saleem
지난 2월, 독일 튀빙겐대학교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미라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발견된 그릇 속에 남은 물질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집트인들은 미라가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지중해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거리가 먼 아시아까지 국제 무역을 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 죽기 전 식사 메뉴까지 밝혀낸다? 세계의 자연 미라

이집트가 아닌 곳에도 다양한 미라가 있어요. 이 미라들은 의도치 않게 수백에서 수천 년간이나 시신이 부패되지 않아 만들어진 ‘자연 미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미라를 통해 외치를 재현한 모습. South Tyrol Archeological Museum

● 2400년 전 사람의 마지막 식사는.

‘톨룬드맨’은 1950년 덴마크에서 발견된 미라입니다. 2400년 전에 살던 사람이지만 피부 주름과 턱수염이 남아 있을 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어요. 겉모습뿐 아니라 장기도 보존 상태가 뛰어납니다.

2021년 덴마크 실케보르박물관 연구팀은 톨룬드맨의 대장 속에 남아 있는 곡물 알갱이 등을 분석해 톨룬드맨이 죽기 12~24시간 전 보리죽과 생선을 먹었다는 것을 밝혀낼 정도였죠. 이집트 미라처럼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방부 처리를 한 것도 아닌데 수천 년이 지난 미라가 잘 보존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계의 미라. Sven Rosborn(W), Kobsev(W), Marcel Nyffenegger 제공

고려대 의대 김한겸 명예교수는 “북유럽 늪지는 산소가 없고 세균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공장의 굴뚝 같은 곳에서도 미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세균이 활동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시신이 부패되지 않아 의도치 않게 자연 미라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몽골과 중국의 사막처럼 매우 건조한 기후 또는 알프스 산맥, 극지방처럼 1년 내내 땅이 얼어 있는 영구동토층 등에서도 미라가 발견되죠.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홍종하 교수는 “미라는 피부나 장기 등 연한 조직이 남아 있어 단단한 뼈만 남은 유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담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 건강 상태와 풍습 등 세세한 생활사까지도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특히 미라는 그에 담긴 DNA 등을 분석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김새를 복원하거나 인류 조상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밝혔어요. 홍 교수는 “발굴부터 DNA 분석까지 방진복을 입는 등 미라가 훼손되거나 연구자의 DNA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지요.

미라 연구는 보관부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라가 묻혀 있을 땐 부패가 일시적으로 멈춰 있다가, 햇빛에 노출되는 등 환경이 바뀌면 변질되거나 부패가 진행되기 때문이에요. 김 교수는 “얼음인간 ‘외치’는 발견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주기적으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라며 “발견됐을 때의 환경과 비슷하게 기온과 압력 등을 조절한 특수한 방에 모셔둔다”고 설명했어요.

2015년 인도 라키가리 유적지의 고고학 발굴 현장. 미라와 뼈는 외부 오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발굴 과정에서 방진복 등 특수한 장비를 착용한다. Shinde et al., 2018

○ 생전 모습 거의 그대로! 우리나라의 미라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특별한 미라들이 발견됩니다. 보존 상태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좋고, 백이면 백 조선시대 미라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0년 오산에서 발견된 미라. 미라가 입고 있던 의복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부검실에 안치되어 있다. 김한겸 제공
우리나라 미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창우 제작

● 잘 보존된 건 독특한 장례 문화 덕분

2016년 의정부에서 발견된 미라. 이때 미라의 폐에서 기생충인 폐흡충이 발견되어 당시 사람들의 폐 질환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김한겸 제공

우리나라는 사막처럼 건조하거나 극지방처럼 춥지 않고, 토양이 산성이어서 매장된 시신이 빠르게 분해됩니다. 이 때문에 자연적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라는 도대체 어떻게 발견되는 걸까요.

수천년 전의 자연 미라가 발견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 미라는 대부분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조선시대 무덤에서만 발견됩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의 장례 문화인 ‘회곽묘’ 때문이에요. 회곽묘는 시신을 나무 관 속에 눕힌 뒤 석회와 모래, 황토 등을 섞은 재료를 관 주변으로 부어 단단하게 굳힌 묘입니다.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벽을 만든 거죠. 염기성 물질인 석회는 산성인 토양과 만나면 굳으며 열을 방출하는데, 이 때문에 관 내부의 온도가 100℃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이 상태가 오랜 시간 유지되면서 시신을 부패시키는 세균이 모두 죽어 멸균상태가 된 거죠.

김한겸 교수는 “석회가 다 굳으면 관 속이 외부와 차단되면서 시신 속에 있던 수분이 유지되었을 것”이라며 “덕분에 일부 미라는 피부에 탄력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잘 보존돼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상남도 하동군 성주 이씨 묘에서 발견된 회곽묘. 나무관이 있고 단단한 석회로 둘러싸여 있다. 약 400년 전 조선시대 하급 관리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있었다. 신동훈 제공

우리나라 미라에서는 어떤 사실들을 알아냈을까요? 김 교수는 “예를 들어, 폐 질환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봉 장군’ 미라를 살펴보면 몸속에서 애기부들 꽃가루가 발견된다”며 “당시 동의보감에 써 있는 치료 방법에 따라 꽃가루를 먹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어요.

홍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자연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미라 연구의 매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21년에는 미라와 함께 출토된 의복과 장신구들이 우리나라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국가민속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지요.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살던 선조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냈는지 알기 위해서는 미라를 연구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미니인터뷰 김한겸 고대 의대 명예교수 

“병리학자와 복식 연구자, 식물학자가 함께 연구합니다”

미라를 연구하다 보면 수많은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병리학을 전공해 미라의 사인과 미라의 주인이 생전에 앓던 질병 등을 밝혀냈어요. 하지만 미라가 입고 있던 옷에서 실마리를 얻으려고 한다면 조선시대 복식 연구자의 의견이 필요하죠.

또 미라 옆에서 발견된 옛 문서가 있다면 서체와 종이를 연구하는 분께 물어봐야 할 거예요. 몸속에서 꽃가루가 발견된다면 식물학자와 함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죠. 이렇듯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조언자가 될 수 있다면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미라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5월 15일, [황금 소년의 비밀] 미라의 과학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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