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新냉전]⑥(끝)中 견제는 해도 배제는 못해…'기술 초격차' 살 길
'셈법' 복잡해진 기업들…미·중 사이에 정부 역할 중요
(서울=뉴스1) 강태우 기자 =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1, 2위의 덩치 큰 형님들의 싸움이 격화될수록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국가, 기업들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는 소방수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딱지가 디스플레이, 모바일, 배터리에 이어 반도체까지 붙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미 세계 전반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달가워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있어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손'이다. 생존까지도 달린 만큼 기업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으로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손이 묶였다"라며 "중국은 부품 공급원이자 최종 제품의 판매 시장으로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에 대한 추가 규제 도입 가능성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 시장을 뺏기면 대안은 없다. 중국과 무역할 수 없다면 미국 기업들에겐 엄청난 손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자국 내 반도체 수요의 80%를 수입한다.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중국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3500억달러(약 463조원)를 웃돌았다.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톱 3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중국에서 4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마이크론 전체 매출의 11% 수준이다. 반도체 제조 장비 부문에서도 중국은 세계 수요의 25~30%를 차지한다. 주로 중국은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장비를 수입한다.
미국이 대중국 수출 규제를 하면서 미국 KLA, 램리서치 등 주요 장비사들은 일제히 연 매출 규모를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메모리) 구매 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응수하면서 마이크론 역시 긴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둔화에 중국 시장의 침체가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며 "반도체 업계 전반에서 중국 시장의 영향력이 큰 만큼 기업들도 포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도 가시방석이다. 미국이 중국 내 마이크론의 공백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꾸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 메모리반도체 수입 비중은 45%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공장도 가동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 패키징 공장을 가동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이, 충칭엔 패키징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낸드 20%를 중국에서 만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 비중은 각각 26%, 38%에 달한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최악의 경우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완전히 철수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금은 기업들이 현재는 어떻게든 미국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한계가 있다. 이에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연구소장은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해 강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며 "우방국이라고 해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부활'이 절박한 일본은 미국과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비교적 잘 풀어가는 모습"이라며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의 대비책을 만들고 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는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22일 우리나라 기업들과 미국 정부에 반도체법 보조금 관련 가드레일 세부조항 수정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조치다.
당장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지만 결국 '기술 초격차'가 해답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중국이 인정하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전 세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황은 어렵지만 기업이 잘하는 것을 하면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에서도 파이를 키우고, AI와 같은 특화된 시장에서의 기술 전략을 잘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urn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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