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피드와 바이스미디어 몰락의 '의미'
소셜미디어 시대 강력한 바이럴 이끈 매체들의 몰락
매체 환경변화·빅테크 중심 광고시장·정체된 혁신에 한계 보여
특정 저널리즘의 실패? "뉴욕타임스도 배우려 한 면 주목해야"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디지털 뉴스의 혁신>. 2015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번역해 출간한 루시 큉의 저서 제목이다. 책의 부제는 '가디언, 뉴욕타임스, 쿼츠, 버즈피드, 바이스미디어 경영 사례'다. 8년 전 디지털 혁신의 선두 주자로 언급된 다섯 매체 중 두 매체가 몰락했다. 버즈피드는 뉴스 부문을 폐지했고 바이스미디어는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두 매체는 '콜러코스터'같은 운명을 맞았다. 버즈피드는 특유의 '바이럴' 기사로 주목을 받았다. 전세계 언론 가운데 방문자 1위를 기록했고, '~하는 몇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제시하는 리스티클 기사는 한국 언론의 뉴스 형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 '낚시 제목'과 선정적 기사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콘텐츠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독자 친화적 전략이 탁월했다는 점에선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2014년 뉴욕타임스가 발간한 혁신보고서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로 꼽을 정도였다. 이후 탐사보도를 보강해 2021년 중국 신장 위구르의 비밀 수용소 심층 보도로 국제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는 등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바이스미디어는 청년들의 펑크 잡지로 시작했다. 대상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저널리즘이 아닌 현장에 밀착하고 주관적 정보 전달에 집중했고 이를 스스로 '곤조 저널리즘'으로 규정했다. 2013년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을 동행 취재해 주목을 받았다. 작은 매체로 출발했지만 총 2조 원대 투자가 이뤄질 정도로 뉴스 스타트업 역사상 최고의 성공 사례를 남기는 듯 했다. 그러나 최대 57억 달러의 가치 평가를 받았던 바이스미디어의 현재 거론되는 매각 금액은 2억2500만달러 수준이다.
부메랑이 된 소셜미디어 바이럴
“우리는 이제 매출 성장과 독자 확보를 위해 소셜미디어에만 묶인 브랜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매체의 몰락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미트라 칼리타(S. Mitra Kalita) 에피센터 뉴욕(Epicenter-NYC) 발행인의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스 매각 추진 소식을 전하며 “결국 바이스는 유튜브, 틱톡, 메타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잃었다”고 했다. 페레티 버즈피드 최고경영자 역시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버즈피드뉴스 폐업 방침을 발표하며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뉴스 플랫폼으로는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 매체가 쇠락을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소셜미디어의 변덕'이다. 2016년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친구들'의 게시물을 기업의 홍보 글이나 언론 기사보다 뉴스피드(게시글 목록) 상단에 배치되도록 알고리즘을 대폭 변경했고, 이후 이 같은 방향의 알고리즘 조정을 지속적으로 했다. 친구의 소식을 보기 위해 접속한 페이스북이 뉴스와 광고글이 넘쳐나 이용자들이 떠나가기 시작하자 내놓은 조치였다. 여기에 미국 온라인 광고시장이 개별 미디어가 아닌 구글, 페이스북 등 빅테크의 독과점 구조가 공고해진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매체는 커진 덩치에 걸맞은 매출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바이스나 버즈피드나 경영난에 처하게 된 건 대략 2017년을 전후해서였다. 두 회사 모두 시장의 기대 매출액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위기론이 조금씩 불거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성규 대표는 이들 매체의 실패 원인이 “VC(벤처캐피탈) 투자로 키워낸 몸집을 수익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주된 수익원으로 삼았던 광고가 기대만큼의 규모로 되돌아오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며 “빅테크 기반의 높은 광고 의존도가 경영난의 핵심 원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광고 시장 60~70%를 장악하고 있는 당시 페이스북과 구글, 이들의 높은 광고시장 독과점을 넘어서지 못했고, 더 빠르게 수익원을 다변화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 환경과 경영적 측면 뿐 아니라 '콘텐츠'와 '문화적'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스미디어 매각 소식을 전하며 “바이스의 매력은 이제 다른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을 전했다.
최진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부소장은 “버즈피드, 바이스의 접근방식은 초기에 성공했지만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미디어들이 쏟아지는 등 명성을 쌓은 콘텐츠 차별화 측면에서 경쟁력 배경이 축소됐다”며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는 더 효과적인 포맷, 더 창의적인 표현기법 등 혁신으로 독자 관심을 끌어야 하지만 기술의 대중화, 콘텐츠 트렌드 변화가 가팔라지면서 투자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최진순 부소장은 “새로운 혁신 미디어는 다양성, 투명성, (독자와의) 상호호혜성을 추구하는 게 필요한 만큼 효율적인 조직관리와 리더십이 필요했다”며 “'초심'을 지키고 유연한 조직문화, 독자참여와 보상 등 새로운 실험을 계속 작동시켜야 했으나 시장경쟁과 자본투입 과정에서 진취성이 희석됐다”고 지적했다.
'특정 저널리즘'의 실패인가
이들 매체의 사례가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동아일보는 지난 17일 <'곤조 저널리즘'의 파산> 칼럼을 통해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의견을 앞세우는 곤조의 '바이스 미디어'마저 파산 신청을 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주의 주장을 앞세우는 '주창주의(advocacy)'나 '단언적(assertive)' 저널리즘, 방관자가 아닌 실천자가 되자는 '시민(civic)' 저널리즘이 그런 시도인데 곤조 저널리즘처럼 오래가지는 못했다”며 “객관주의에 대한 건전한 반성에서 벗어나 사실을 무시하고 정파성을 드러내는 바람에 줄줄이 외면받았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에서 큰 목소리를 내던 폭스뉴스와 CNN 간판 앵커가 얼마 전 나란히 퇴출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중요하고 주관적 저널리즘의 위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두 매체의 실패에는 다른 요인들도 컸다. 최진순 부소장은 “이 두 미디어의 '실패'를 주창 저널리즘의 실패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특정 관점이나 의제를 바탕으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보도하는 주창 저널리즘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유형의 보도도 이어왔다”고 했다. 그는 “빅플랫폼 의존 미디어의 실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전통적인 저널리즘 관행을 따르는 미국 내 크고 작은 기성 언론사들도 최근 10년 동안 경영위기를 거듭하고, 신문발행 중단, 구조조정 등이 이어졌다”고 했다.
최진순 부소장은 “기성언론은 뉴스 스타트업 등 새로운 미디어의 위기와 실패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면 가치와 교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라며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도 그들로부터 배운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버즈피드 저널리즘의 가치로 △젊은 세대에게 시사문제를 간결하게 전달해 관심을 확산 △자신감 있는 주장과 형식을 제시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기 쉽도록 함 △소셜미디어의 유행과 전통 저널리즘을 공존시키는 훌륭한 큐레이션 등을 꼽았다.
2014년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버즈피드를 우습게 취급해도 되는가”라며 “우리는 여전히 최고의 저널리즘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우리 경쟁자들이 잘하는 것은 공유와 확산이다. 독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디지털카메라와 경쟁하다 사라진 코닥과 같은 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버즈피드의 영향을 받아 지속적으로 콘텐츠 유통 방식을 개선해왔다.
국민일보 유튜브 혁신 실험을 담당했던 이용상 산업2부 기자는 지난 19일 칼럼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주목받던 미국 뉴미디어 업체들이 잇달아 몰락했다는 기사를 본 기성 언론 기자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중략) 여기저기서 이들의 저널리즘을 폄훼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시도가 팔짱만 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이성규 대표는 “국내 언론에 주는 시사점보다는 미디어 스타트업에 남기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다고 본다”며 “훌륭한 저널리즘만으로는 버텨내기 어려운 것이 뉴스미디어의 생태계다. 결국 좋은 저널리즘은 건강하고 탄탄한 수익구조와 함께 할 때 지속가능하다는 것. 특히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VC 투자를 받고 몸집을 키운 뒤 수익을 본격화하는 이런 전통적인 모델과 결별해야 한다는 걸 명확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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