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5. 2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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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없지만 정부 개입은 더 큰 문제 야기
‘스마트한 개인’들의 ‘합리적 기대’로 정부 정책 효과 기대 어려워
‘루카스의 역설’ ‘나무이론’ 등으로도 유명

‘1970년 이후 거시경제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

로버트 루카스(Robert Emerson Lucas, Jr.)미국 시카고 대학 명예교수에 대한 한줄 평가다. 그가 15일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경제학계는 거인을 추모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루카스 교수는 관료들로 구성된 정부가 합리적 개인으로 이뤄진 시장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다는 철학을 경제학 이론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자본주의적 시장이 경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정확이 인식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하려는 정부 관료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요즘처럼 미국의 긴축과 은행 위기, 개발도상국들의 좌충우돌 경제정책 등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혼란이 심해지는 때에 그가 제시한 경제학 패러다임은 큰 울림을 낳는다. 그의 업적을 하나씩 살펴본다.

챗GPT로 대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모든 사람은 비슷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거대한 정부나 큰 기업조직을 운영하는 대기업들만 양질의 정보를 향유하던 시대는 지났다. 루카스 교수는 1970년대에 이런 상황을 정확히 예견했다. 그는 많은 정보를 갖고 이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스마트한 개인’들로 이뤄진 사회에서는 정부의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그 과정은 이렇다. 정부 경제 정책의 효과는 정부와 민간이 갖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한다.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은 개인이나 기업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을 압도한다. 정부는 이 정보에 기반해 경제 정책을 펴왔다. 한 마디로 시장에 있는 개인들을 그럴듯하게 속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 불황 때 정부가 돈을 풀면 이 돈은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온다. 그럼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늘었다고 생각하고 이 돈을 쓴다. 이 때 시장에서는 수요가 늘어나 기업들은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만약 사람들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단순히 정부가 찍어낸 것이라고 알아차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장의 물건은 그대로인데 정부가 돈만 더 찍어냈다면 이는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럼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왔다고 해도 이 돈을 당장 쓰지 않고 물가가 올랐을 때를 대비해 갖고 있는다. 그럼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가만 오를 뿐이다.

정부가 세금을 줄여주는 감세 정책을 편다고 해도 합리적인 개인들은 정부가 지금은 세금을 낮춰주지만 재정적자를 견디지 못해 다음번에는 세금을 다시 올릴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한다. 정부라고 해서 적자를 계속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현재 세금이 줄더라도 이 돈을 소비하기 보다는 저축을 해 훗날 올라갈 세금에 대비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루카스 교수는 똑똑한 개인들이 ‘합리적인 기대’를 한다면 정부의 경제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내려 돈을 풀려고 하면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예측하고 시장에 있는 채권의 금리가 먼저 내린다. 요즘에는 시장이 먼저 반응을 하고 거기에 맞춰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가 되면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정작 기준금리를 내리는 시점에서는 시장금리는 별 반응이 없게 된다.

특히 인터넷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상황에서 정부정책은 갈수록 영향력을 잃고 있다. 루카스 교수는 1970년대에 이런 현상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관리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경제성장과 관련한 아이디어도 많이 인용된다. 루카스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 과정은 기본적으로 인적자본(휴먼캐피털)에 의존한다고 봤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는 인적자본을 축적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는 기술발전으로 이어지며 기술발전이 곧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인적자본 축적을 위한 교육과 지식에 대한 투자는 경제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성장의 중요성을 사람에게서 찾은 루카스 교수의 아이디어는 경제성장이 경제내의 요소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내생적 성장이론’으로 발전해갔다. 한국과 같은 면적이 적어 자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들도 인적자본의 투자를 통해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여줬다.

‘루카스의 역설(Lucas’ Paradox)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이론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맞다. 자본이 풍부한 선진국보다 자본의 희소한 개발도상국에서 자본의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카스 교수는 현실적으로 자본이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이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로 후진국의 제도적 낙후성, 정치적 불안정성 등을 꼽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후진국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자본 유입을 막는 이유로 꼽았다. 루카스 교수는 이런 현실적인 요인 때문에 자본주의 이론이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자본주의 경제학을 가장 발전시킨 인물로 꼽히는 루카스 교수가 자본주의 이론의 한계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자산시장에 대한 이론도 유명하다. ’나무(Tree) 이론‘으로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루카스 교수에 따르면 나무의 가치는 나무의 크기나 무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무에 열리는 열매의 값을 계산해 나무의 가치가 결정된다. 매년 사과가 10개씩 열리는 사과나무의 값어치는 올해 열리는 사과 10개의 가치에 내년 후년 등 앞으로 계속 열릴 사과의 값어치를 할인해서 계산된다. 사과나무 값이 이렇게 결정되는 것처럼 주식 부동산 채권의 가치의 결정 방식도 비슷하다.

현재 기업 주식의 값은 매년 주어지는 배당을 할인한 값이고, 채권은 매년 발생하는 이자를 할인한 것, 부동산은 매년 발생하는 임대료를 할인한 것이 자산가치가 된다. 각종 투기나 투자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기본적인 가치가 자산 값의 근본을 형성한다는 얘기다. 루카스 교수의 모델을 현실에 적용하면 각종 금융•실물 자산 가격의 중심을 계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을 합리적인 개인들의 집합적인 행동으로 본 루카스 교수는 경제성장, 자산시장, 국제자본 이동 등 경제학의 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아이디어는 후학들에 의해 계속 보완 발전하고 있다. 또 그가 제시한 경제학적 방법론은 그와 다른 경제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케인지언들에 의해서도 인용된다. 그의 명복을 빈다.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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