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협력하자"…한국에 손 내미는 중국의 진짜 속내는?
마이크론 제재 후 韓 협력 필요성
미국의 대중 반도체 산업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한국과 반도체 협력 강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APEC 무역장관 회의에서 만나 회담한 뒤, 양국의 반도체 협력을 특히 부각한 보도문을 27일 발표했다.
상무부는 양측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 수호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하면서 반도체 분야를 특정해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같은 회담 뒤 보도자료를 통해 "안 본부장은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고 했다.
중국 측이 공급망 논의 중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뜻을 강력히 부각했다면, 한국 측은 이차전지 소재인 리튬처럼 대중 의존도가 특히 높은 핵심 광물과 원자재, 부품 등의 원활한 수입을 포함한 광범위한 공급망 협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국 측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양국 간 협력을 언급한 상황에서 중국이 민감한 반도체 영역을 콕 집어 '한중 양국이 동의했다'는 식으로 일방적인 보도문을 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중요 외교 행사 후 각국이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합의', '의견 일치' 부분은 사전에 양국 간 긴밀한 조율로 세밀한 문구까지 정해진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떼어놓는 탈동조화(디커플링) 차원에서 수출 규제 등 거센 대중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반도체 장비·소재 공급망에 중요한 일본과 네덜란드 등을 동참시키려 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이 보안 문제를 빌미로 '중요 인프라 사업자'들이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제재를 시작하면서 중국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한국 메모리 업체에 운명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국 당국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초과인 상황에서 세계 3대 과점 업체 중 하나인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부분적으로 줄이는 반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이런 전략은 마이크론의 공백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채워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대만 문제를 '국제 문제'로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전 로이터 인터뷰 이후 한국에 거친 불만을 연달아 표출하던 중국이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강한 톤으로 한국과 경협 강화 의지를 밝힌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왕 부장은 "중국은 한국과 함께 양자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심화하는 것을 비롯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고, 양자 및 지역에서의 협력과 다자 차원의 경제·무역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최근 한·미·일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각을 세우되, 경제 영역에서는 협력을 모색하는 '정랭경온' 기조를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론 제재로 상징되는 미중 간 반도체 전쟁 격화는 중국에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당장 미국은 한국 메모리 업체들이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워 '추가 이익'을 취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강력한 경고음을 낸 상태다.
미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23일(현지시간)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 채우는 것(backfilling)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수출 통제 조치를 통해 중국 내에서 운영되는 삼성전자의 시안(西安) 낸드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우시(無錫) D램 공장의 생산량과 장비 반입을 통제할 수 있어 우리 업계는 이런 '미국발 경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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