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과 반도체 공급망 협력 강화”… 일방 발표 논란

류정 기자 2023. 5. 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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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WBC호텔에서 왕 원타오(Wang Wentao) 중국 상무부 부장과 면담을 갖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중국이 한국과 통상 장관 회담을 갖고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데 동의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다급해진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5~26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중국·캐나다·칠레 등 주요 APEC 회원국의 통상 장관들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이중엔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도 있었다.

이날 중국과의 회담에 대해 우리 산업통상자원부는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양국 경제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안 본부장이 중국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 내 우리 투자기업들의 예측 가능한 사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 내용에 반도체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23.3.26/뉴스1

그러나 중국이 밝힌 내용은 많이 달랐다. 27일 중국 상무부는 위챗 공식 채널에서 한중 통상 장관이 디트로이트에서 만나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언뜻 보면 한국이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협력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해석된다.

중국측 발표에 따르면 안 본부장은 “최근 몇 년간 한·중 경제무역 관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양국 간 긴밀한 협력 관계는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흐름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 본부장은 “한국은 양국 간 경제·무역 협력 관계를 더 심화시키고, 역내 및 다자 틀 아래 양국 간 협력 영역을 확장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양국 정상의 전략적 지도 아래 중한 경제·무역 관계가 심화·발전했다”며 “중국의 수준 높은 대외 개방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한국과 함께 양자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심화하는 것을 비롯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고, 양자 및 지역에서의 협력과 다자 차원의 경제·무역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일러스트. /연합뉴스

하지만 우리 산업부는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된 구체적 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측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한마디를 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나 합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대화의 주요 주제가 아니었는데, 중국이 일방적으로 마치 한국과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중 기술 전쟁에서 중국이 코너에 몰리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에 대한 제재가 지속되자 중국 당국은 지난 21일 “미국 마이크론 제품은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있으니,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는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보복 제재를 가했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술력이 아직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도 미국에 강력 제재를 가한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으로부터 조달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세계 3위 메모리 업체로 지난해 전체 매출 중 중국 비율이 약 11%다.

하지만 미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에게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미 백악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중국이 예고한 미 반도체 제재가 개시될 경우,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파이낸셜타임즈(FT) 보도가 나왔다. 이어 23일(현지시각)에는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장(공화당)이 대중 보복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에서 한국을 직접 거론했다. 갤러거 의원은 한국을 ‘최근 몇 년간 중국 공산당의 경제 강압을 직접 경험한 우리의 동맹국’이라고 지칭하면서 “미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에 부여된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 공백을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갤러거 미 공화당 의원이자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장은 23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미 상무부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로이터연합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법적 규제를 시행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당장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끊지는 않을 것”이라며 “첨단 반도체가 아닌 일반 범용 메모리 반도체 범위 내에서 로우키로 거래하지 않을까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국도 자국 반도체업체를 키워 자급자족력을 높이려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틀간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 결론을 담은 ‘공동성명’은 중국과 러이사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의장성명을 통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장관이 1~3, 5~13항의 공동 성명에 합의했다”며 “다만 2022년 11월19일 APEC 정상회의 당시 성명에서 발췌한 4항을 놓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APEC 통상장관회의는 26일 의장성명으로 대체하고 회의를 마쳤다. 타이 대표는 “APEC 정상회의에서는 공동 성명이 채택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차기 APEC 정상회의는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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