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하지 말라는 건가"…'이승기법' 가요계 반발한 이유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청소년 연예인 활동시간 제한에 업계 반발
낮아지는 아이돌 연령…K팝 성장 저해 '우려'
"미성년자 멤버 활동시간 이미 많은 부분 조율"
"엔딩 무대서 빠지는 등 오히려 차별" 주장도
최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 이른바 '이승기법'을 두고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예인의 권리 신장을 위한 이 법이 오히려 일부 아이돌 활동에 제약을 거는 등 차별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성년자 연예인의 활동 시간을 기존보다 더 줄여 제한하겠다는 항목이 문제가 됐다. 이 내용을 두고 업계는 현장의 실상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산 문제가 핵심이었던 이승기 사태와 무리하게 묶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회계 내역을 공개하는 등 투명한 정산을 위한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 시간 제한'과 관련해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소위 '이승기법'이라 불리는 대중문화예술산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가수 이승기가 소속사로부터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발의됐다. 정산 과정에서의 부당함이 없도록 연예인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될 것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연예기획사 등)가 회계 내역 및 지급해야 할 보수에 관한 사항을 소속 예술인의 요구가 있을 때뿐 아니라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불공정행위 조사를 위해 관계자 출석요구, 진술 청취,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했고, 표준계약서 제·개정 시 대중문화예술용역 계약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게 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업계는 위 내용에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이지만, 아동·청소년 연예인들의 노동시간 상한선을 낮춘 것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연령대가 낮고, 여러 명이 단체로 움직이는 아이돌 그룹의 활동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15세 미만 주 35시간, 15세 이상 주 40시간인 청소년 연예인 노동시간 상한 규정을 더 세분화해 제한했다. 12세 미만 주 25시간 및 일 6시간, 12~15세 주 30시간 및 일 7시간, 15세 이상 주 35시간 및 일 7시간 등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청소년은 연예인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헤어·메이크업 등 준비 시간과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3시간에 달하는 콘서트나 심야 시간에 진행되는 시상식 등은 미성년자 멤버들을 포함한 모든 인원이 함께 소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미 NCT 드림, 아이브의 일부 멤버들이 콘서트 및 시상식에서 엔딩 무대를 장식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15세 미만 연예인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는 활동할 수 없다. 다음날이 학교의 휴일인 경우에만 본인 및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자정까지 용역 제공이 가능하다. 15세 이상인 경우에는 당사자 및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가 있을 때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에 활동할 수 있다.
이미 위 항목에 따라 부모의 동의를 얻고, 현장에서 무대 시간을 조율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에 명시된 내용은 무리한 조건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미성년자 멤버는 밤 10시가 지나면 활동에서 제외하고 있고, 15세 이상인 멤버는 동의서에 부모님 사인을 받는다. 밤에 녹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방송인데 공휴일인 경우에도 동의서를 받는다. 특히 시상식이 많은 연말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방송국에서 10시에 끝난다고 해도 매번 시간을 넘기니 결국 엔딩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미성년자 멤버가 있는 팀은 축제 무대도 밤 10시 이전에 선다. 엔딩을 포기하고 초저녁에 공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이승기법' 내용은 사실상 청소년은 연예인을 하지 말라는 거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현실 반영이 전혀 되지 않았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차별당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하루 6~7시간이면 콘서트도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악용하는 사람들 안에서 연예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나이로 뚝 잘라서 적용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K팝 산업의 특성상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 번의 기회라도 놓치게 된다면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오히려 기회를 박탈당하는 케이스가 발생할 수 있어 안타깝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합숙하고, 해외 투어를 가고, 사생활마저도 대중들에게 소비가 되는 아티스트의 경우 어디까지를 근무 범위로 볼 것인지도 다소 애매한 지점"이라며 "이는 멤버들 역시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K팝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에 청소년 멤버가 포함되는 등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2008년생인 막내 혜인(15)을 비롯해 모든 멤버가 15~19세 청소년이며, 아이브는 2007년생인 막내 이서(16)를 포함해 장원영·리즈(18), 안유진·레이(19)까지 미성년자다. 최근 데뷔한 더윈드는 평균 연령이 16.8세이며, 데뷔를 앞두고 있는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에도 14~17세 멤버들이 포함돼 있다. SM엔터테인먼트도 하반기에 3팀의 데뷔를 계획 중인데 성인 멤버들로만 구성될 가능성은 낮다.
이에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등 5개 단체는 '이승기법' 중 청소년 연예인 노동 시간 제한 강화 규정에 대해 삭제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이들 5개 단체는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외면한 '대중문화산업 발전 저해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타 예술 분야와 비교해 유독 화제성이 높은 대중문화에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학생들의 '학구열'은 존중받는 반면, 꿈을 이루기 위한 청소년 예술인들의 의지와 노력은 타의에 의해 제약을 받아도 되냐는 것이다. 실제로 멤버 전원이 미성년자일 때 데뷔해 현재는 모두 성인이 된 NCT 드림의 경우 "법적으로 밤 10시 넘어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뮤직비디오 촬영도 새벽까지 하고 좋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타 분야 입시 준비생들은 새벽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느냐. 연예 활동을 하는 청소년 멤버들도 꿈을 위해 자기의 시간을 한 곳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와 생각이 있는 인격체인데 오히려 이러한 제재 탓에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며 개정안의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티스트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는 "멤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면서 "학습권의 경우 청소년 멤버들은 학교를 꼬박꼬박 다니면서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습득할 수 있게 오히려 트레이닝을 조율하고 있으며, 불가피한 스케줄에 있어서만 멤버, 부모님, 학교와 수많은 협의를 통해 조정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일반적인 청소년들이 배우는 과정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회사에서 채워주려고 한다. 독서·현장학습·작문·인성교육 등을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 모든 연습생과 아티스트들이 춤·노래 외에 희망하는 학습이 있다면 긴밀한 조율을 통해 회사에서는 가능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면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멤버들의 컨디션, 건강 상태 등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스케줄 이후에는 반드시 휴가를 통해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여러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아티스트의 건강 상태를 최우선으로 두고 활동할 수 있게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엔터사에서 이미 상당 부분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현실성을 고려해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해야 할 테다. 단순한 '연령 제한'이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현명한 방식일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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