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문화정치] '정체불명 뉴스'의 넝마
[미디어오늘 김예란 광운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체불명의 뉴스
나는 요즘 들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언론 현상에 종종 맞닥뜨린다. 내가 '정체불명 뉴스'라고 부르는 경향이다.
일례로 네이버의 뉴스사이트에 등장한 주요 언론들의 첫 페이지에는 거의 공통적으로 “WP, 김건희 여사에 'clotheshorse'표현… 美독자 '무례하다' 지적”이란 제목(그와 동일하거나 약간의 표현만 바꾼)의 기사가 등장했다(5월16일). 기사 내용은, 미국 질바이든 여사의 패션을 칭찬하는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사에서, 김건희 여사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을 뜻하는 'clotheshorse'로 언급했는데, 이 표현은 '무례'하고 기사 내용으로 '입증'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독자 편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여러 이유에서, 그저 '정체불명'이다.
첫째, 이 기사의 근원은 무엇인가? 어떤 기사도 뉴스원은 밝히지 않았다. 보도자료가 아니라면 기간 통신사나 각 언론사의 취재이며 언론사의 기자들이 사건 발생 후 며칠이 지난 후에 취재 혹은 연쇄 보도한 걸까 짐작해 보지만. 모호하다. 워싱턴포스트지에 독자 편지가 실린 날은 현지시간 5월12일, 한국 언론의 보도일은 5월16일이다<워싱턴포스트-<a href="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3/05/12/reader-critiques-kim-keon-hee-fashion-insult/" target="_blank">Readers critique The Post: Please don't insult South Korea's first lady>. 보도 시간이 자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주어가 부재중이다. 참고 비교로, 이를테면 “BBC는 ○○○을 조사했다, 취재했다, 정보를 입수했다(investigate, learn, understand)”로 뉴스의 근원을 밝히는 구절은 세계 주요 언론기사의 첫머리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둘째, 이 뉴스가 언론사 전체가 앞다퉈 실을 만큼 뉴스가치가 있는 기사인가? 물론 전혀 아니다. 내가 별도로 찾아 확인한 결과 해당 기사는 워싱턴포스트지의 'STLYE'란에, 기자가 아닌 패션평론가가 자신의 '관점(perspective)'으로 작성된 글이다<워싱턴포스트-<a href="https://www.washingtonpost.com/lifestyle/2023/04/26/jill-biden-state-dinner-korea/" target="_blank">At the state dinner, Jill Biden stays understated>. 심지어 그에 대한 독자의 편지 정도야. 따라서 그나마 이 기사의 가치가 있다면, 국내 언론사들이 뉴스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성과 판단력이 결여되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데 있다.
셋째, 이 뉴스의 목적과 효과는 무엇인가? 시민에게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를 전하기 위한 기사는 애당초 아니다. 그렇다면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정서적·이념적 노력인가? 아니면 한국의 자존심을 살리고 사회적 통합에 힘쓰기 위해서인가? 다 억지스럽고 유치하다.
마지막으로, 언론 환경의 차원에서, 어떻게 이런 뉴스가 동일한 날, 거의 같은 표현, 내용, 구조의 기사로 다수 언론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크게 다뤄진 걸까? 심지어 해당 언론사들이 평소에 보였던 이념과 접근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 질문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답할 수 없다. 언론 전체가 뿌옇고 둔해 보인다. 이쯤 되면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언론이 독자들에게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가 되는 순간, 이를 나는 '언론 위기'라고 말하겠다.
뿌옇고 둔한 언론의 위기
이 언론의 위기는 '정체불명 뉴스'에서 비롯한다. 내가 말하는 정체불명 뉴스란 뉴스의 구성 과정, 절차, 산물, 효과, 조건에 관한 전체 혹은 부분 정보가 은폐되거나 누락된 뉴스다. 다시 말해 취재와 보도 모든 요소에 대해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 말해진 내용에 언론이 책임을 지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상실한 뉴스가 정체불명 뉴스다.
정체불명의 뉴스는 개별 뉴스 내용 자체에는 오류가 없을 수 있다(이 점에서 허위조작정보와 다르다). 그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 도 '아니오'도 아닌 '모르겠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 책무성의 가장 중요한 근간인 뉴스 구성 및 결정 과정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부재하기에 그 악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때우고 뭉개고 돌려막는 언론의 넝마주의
정체불명의 뉴스는 앞에서 언급한 뉴스 하나만의 현상이 아니다. 이미 그 유사 형태는 증식하고 심화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편의에 따라 익명의 뉴스원으로 '때우는' 뉴스, 취재하지 않은 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말로 '뭉개는' 뉴스, 교차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단골 뉴스원의 말을 빌어 '돌려막는' 뉴스는 모두 정체불명 뉴스에 해당한다.
정체불명 뉴스의 범람은 언론의 넝마주의의 일종이다. 불분명할 뿐 아니라 대부분 불필요하며 무가치한 정체 모를 쓰레기 말을 주워 모으고 퍼트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체불명 뉴스는 전문적 언론사들의 '번듯한' 관행을 통해 조용히 확산되기에 대중이 행하는 악플이나 허위조작정보보다 더 위해할 수 있다. 첫째, 언론이 뉴스 가치 판단력과 독립성을 잃은 채 정치적·상업적 이해관계에 동원된 결과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둘째,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확한 사실과 책임있는 주장이 사라지고 소문, 냉소, 음모가 증식된다. 셋째, 시민들의 정치적 감각과 인식이 흐려진다. 헛웃음, 비아냥거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음'이라는 언론 현실에 대한 무감각이 확산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 시민이 뉴스 이용을 통해 더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모르게' 된다.
영락없는 중독의 징후다. 넝마의 독소에 우리는 중독되고 있다. 별안간 영토 내 중독에 대한 '엄벌' 담론이 강화되는 희한한 시절에, 어쩌면 진짜 위험한 중독은 언론계의 한복판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누구 혹은 무엇에 의해? 짐작하시듯이 이것 또한 정체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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