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젊은 정치인 김남국의 ‘양심(良心)’

천남수 2023. 5.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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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은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이자 영혼의 소리’라고 한다. 양심 불량의 시대는 공동체의 질서를 무력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도 파괴한다.

필자 대학 시절 총학생회장 선거 구호로 ‘양심(良心)’이 등장한 적이 있다. 1985년 각 대학은 학원 자율화로 학생들의 자치 조직인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총학생회장도 직접 선거로 뽑았는데, 이 선거 과정에서 한 후보자의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양심’이었던 것이다. 당시 다른 후보들은 학원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주장했는데,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보이고 있던 이 후보자는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을 위해 이같은 구호를 선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양심적인 학생회 운영이 청년학생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가 주장한 양심은 사전적으로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생각하는 감정상의 느낌을 이른다. 하지만 양심이 인간의 고유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양심이 개인의 도덕적 기준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르다. 중세 봉건사회에 적용되는 양심과 현대사회에 적용되는 양심의 기준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조항이 있다. 강제적 힘에 의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양심이 침해되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니까 양심이 곧 인간의 기본권인 셈이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양심을 두고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라고 했다. 양심이 인격적 존재가치를 지탱하는 마지막 내면의 외침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양심은 영혼의 소리”라고 할 정도로 양심이 인간 정신세계 전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정의로움을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했다. 양심은 철학의 문제이자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의 양심을 믿습니다’라면서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감추어진 비리나 부정을 양심에 따라 사회적으로 드러내어 알리는 양심선언도 있다. 양심선언은 권력 기관이 저지른 비리나 부정을 사회적으로 폭로해 사회적 경종을 울리고, 불합리한 것을 바로잡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사람의 심성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의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 지난 17일 국회 윤리특위에서 변재일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김남국 의원에 대한 윤리특위 제소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오늘 장황하게 양심 얘기를 꺼낸 것은 ‘양심 불량’의 세태 때문이다. 실제로 양심 불량 사례가 너무 많아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한 양심 불량 사례들이 많다. 수십억 원의 로또에 당첨되고도 체납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는 최근의 일이다. 양심 불량은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불편을 겪거나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양심 불량에 해당된다. 그런데 양심 불량 얘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몰아닥친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거래 문제는 이 시대 양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추악한 거래’라면서 낙인찍기에 나섰지만, ‘오십보백보’ 아니겠는가. 모두가 양심 불량 시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젊은 정치인 김남국 의원의 코인거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40대 정치인으로 매우 선명한 의정활동을 펼쳤던 차세대 주자여서 그의 행적에 실망감이 더욱 큰 것은 사실이다. 물론 코인을 하는 것이 양심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대신해 일하는 시간에 코인 거래를 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억울할 것이다. 남들도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 텐데, 하필 나만 그런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인지 답답할 것이다. 대정부 강경 투쟁을 주도한 자신에 대한 검찰의 공격에 기인한 것, 정치공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법이 없었으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일부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그 변명이 계속될수록 결국 그의 양심까지 의심하게 된다. 양심 불량은 불법행위와 관계없이 도덕적 문제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양심이 발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한 인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에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직 대통령이 남긴 말 중 “왜 나만 가지고 그래”가 있다. 자기 합리화의 전형이었다. 젊은 김남국 의원에게 대단히 미안한 일이기는 하나, 김 의원도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자기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김 의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책임감을 생각한다면, 이것도 정치인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 김남국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합리화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사실관계 확인부터가 필요하다고,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고 억울하겠지만, 이를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다. ‘양심 불량’의 전성시대에도 젊은 정치인의 살아있는 양심을 보고 싶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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