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행위’ 후쿠시마 시찰이 몰고 올 후폭풍

안광호 기자 2023. 5.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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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G7 성명에 ‘IAEA 검증 지지’ 표현 이끌어
정부가 방류 인정하면 수입규제 근거도 사라져

[주간경향]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원전) 오염수 시찰단을 꾸리기 전부터 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시찰단이 현장을 점검하는 와중에 방류를 기정사실화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라고 압박했다. 우리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 일본 쪽에 기운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국제기준’만 강조하고 있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수입규제 장벽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찰단이 오염수 해양 방류의 정당성만 확보해줄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 5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 시찰을 마치고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도쿄전력 폐로자료관에 돌아와 취재진에 점검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의도대로 진행되는 오염수 방류

우리 정부 시찰단이 오염수 관련 설비들을 첫 현장 점검한 지난 5월 23일, 후쿠시마 제1원전 주무장관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IAEA 포괄보고서가 올해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따라서 (오염수) 해양 방류 시기를 봄에서 여름 무렵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했다. IAEA 최종 보고서가 6월 중 나오면 7~8월쯤 방류할 것이란 의미다. 같은 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 철회 요구도 나왔다.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상은 “한국은 후쿠시마, 미야기 등 8개 현의 거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고 있다. 이번 시찰은 처리수(오염수) 조사가 중심이라고 하지만 그것과 함께 수입 제한 해제도 요청하고 싶다”고 했다.

시찰단 활동이나 향후 시찰단이 내놓게 될 결론과 무관하게 자신들이 계획한 일정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이다. 일본은 시찰단이 꾸려지기 전부터 이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일본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7일 정상회담에서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한 이후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해 한국 측에 설명하겠다”면서도 한국 시찰단의 역할이 오염수의 안전성 평가는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국제사회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큰 공을 들여왔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만찬 식탁에 후쿠시마산 사케 등을 내놓고 후쿠시마산 식재료의 안전성을 홍보했다. G7 정상들이 5월 20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방류 환영’이란 문구는 빠졌지만 “인간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IAEA 안전 기준과 국제법에 따라 수행될 IAEA의 독립적인 검증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이끌어냈다. 이는 우리 정부 인식과 동일하다. 윤 대통령은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과 국제기준 부합을 전제로 한 검증”을 강조해왔다.

문제는 IAEA 판단이 일본 정부에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IAEA는 그간 수차례 내놓은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가장 최근인 5월 4일 일본 원자력 규제당국(NRA)의 활동을 살피고 평가한 5차 보고서에서도 “일본의 NRA가 독립 규제기관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NRA가 핵종 선정에 대해 시행한 검토 활동과 관련해서는 “선정된 핵종들이 방사선학적으로 중요한 핵종들이고 인체 등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종들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슷한 취지로 오는 6월 IAEA 최종 보고서가 나온다면, 오염수 해양 방류는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한·일 관계 개선에 올인하는 현 정부가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한 2021년 4월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오염수 안전성 독자 평가를 요구해온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당시 국제해양법 재판소 제소를 검토하라 지시했으나 (일본 정부와의 마찰 등을 우려한) 외교부와 원안위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동안 독자적 안전성 평가를 포기한 원안위의 책임자(유국희 위원장)가 시찰단의 단장으로 임명됐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어떤 의견을 내기 위해 시찰단을 보낸 것이 아니라 IAEA 뒤에 숨겠다는 의도다. 결국 방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IAEA 조사를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지난 5월 22일 어기구 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과연 안전한가’ 토론회에서 “IAEA는 원자력진흥기구로 중대사고 환경영향평가 기준도 없이 진행되는 IAEA 조사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또한 일본 수입 농수산물에 대해 (삼중수소처럼 베타입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핵종인) 베타핵종을 포함한 검역을 강화하는 특별법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만과 영국, 수입규제 해제

오염수 방류의 다음 수순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재개 요구다. 한국은 현재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모든 수산물과 후쿠시마 등 15개 현의 쌀과 차, 버섯류 등 27개 품목의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만과 영국의 사례에 비춰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대만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등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왔다.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원했던 대만 정부는 국민 여론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엄격한 검사를 전제로 수입을 허용했다. 한 달 후인 3월엔 시찰단을 보내 방류 전에 핵종을 측정하고 오염수를 저장하는 K4 탱크와 해저터널 현장 등을 둘러봤다. 하지만 도쿄전력이 통제하면서 실질적인 시찰이나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은 후쿠시마 등 주변 9개 현, 23개 품목의 식품류에 대해 방사성물질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입을 규제해왔다. 지난해 6월 기시다 총리를 만난 존슨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규제 철폐를 공식 선언했고, 11개 CPTPP 회원국은 올해 3월 말 영국의 가입을 인정했다. CPTPP 가입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오염수 해양 방류는 먹거리 불안을 키워 수산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어민과 어업계는 오염수 해양 방류 철회와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 제주시 수협 도두어촌계와 해녀 등 150여명은 지난 5월 22일 제주 도두항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 즉각 철회’를 요구하면서 해상 시위를 벌였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일본 오염수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더라도 수산물 소비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지난 한 해 수산물 수출이 32억달러(약 4조2000억원) 수준인데, 마찬가지로 우리 땅에서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수산물 수요도 줄어들 수 있다. 어민들의 생계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수산물 소비 감소에 대비해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관계부처가 비공개로 논의한 ‘후쿠시마 오염수 동향 및 정부 대응 방향’을 보면 수산물 안전관리와 소비 위축 대응 방안이 마련돼 있다. 국내 수산물 방사능 검사의 경우 지난해 약 100종, 약 4000건에서 올해는 전 품종, 8000건 이상으로 대상을 2배 이상 확대한다. 오염수 해양 방류 전 어획한 수산물도 최대한 비축한다. 예컨대 비축 물량은 기존 2만5000t에서 올해 3만2000t으로, 관련 예산도 1080억원에서 1750억원으로 각각 늘린다. 또 국내 수산물 할인행사 참여 업체와 규모를 최대 연 10회까지 늘리는 등 전방위적 소비 촉진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5월 22일 제주 도두항에서 도두어촌계와 해녀 등 150여명이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방류 시 수입규제 근거 사라져

일본이 수산물 수입 재개를 요구하더라도 내년 총선과 국내 정서를 고려했을 때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문제는 오염수가 실제 해양에 방류되고 난 이후엔 압박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수산물 수입규제는 근거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5월 8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수산물 수입규제에 관해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며 다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2019년 4월 WTO에서 1심 판정 결과를 뒤집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우리의 국제법적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우선 오염수 해양 방류가 ‘런던의정서’에서 규정하는 ‘해상 투기’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해양 환경 보호와 보전을 규정한 런던의정서는 폐기물 등의 해상 투기를 금지한다. 우리 정부는 2019년부터 런던의정서 당사국 총회 등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반면, 일본 정부는 육상 시설에서 해양으로 방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박에서 바다로 투기하는 행위를 금하는 런던의정서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2019년 WTO에서 우리가 승소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바다 환경이 위험해졌고, 이에 수입규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잠정조치’라는 점이다. 만일 오염수가 해양에 방류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가 방류를 인정하는 상황이 되면 수입규제를 유지할 근거가 사라진다. 일본이 오히려 WTO 규정을 적극 활용해 수입규제가 보호무역 조치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수세적인 위치가 되는 셈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일본에 독자적 안전성 평가 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분석한 결과를 확보해 놓아야 국제법적으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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