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이하 서민주택이 전세사기의 먹잇감이 된 이유는?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3. 5. 27. 08: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학봉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 협회장 인터뷰

“전세사기가 3억원이하 서민주택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정부가 서민주거 시장인 빌라, 오피스텔 시장의 구조를 잘 모르고 전세대출과 보증을 무분별하게 확대한 결과이다. "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은 “전세사기 사건과는 별로도, 전세가격 급락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면서 “현재의 정부정책으로는 똑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6년에 설립된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개업중인 공인중개사 11만8000명 중 11만3000명이 가입해 있다. 이 회장은 부동산학 박사로 단국대, 목원대 등에서 교수·강사로도 활동했다.

-전세사기로 서민들의 피해가 많다.

“청년 등 서민층이 전세 사기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공인중개사협회장으로서 먼저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협회가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리면서 최선을 다해서 예방책도 강구할 것이다.”

-전세사기의 원인은?

“전세 사기는 5년 전에도 있었고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발생한 적은 없다. 과거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가 좀더 관심을 갖고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근본적으로 보면 전세는 서서히 축소돼 가던 제도인데, 국가가 ‘친서민’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월세를 선택하던 사람들이 전세로 돌아서면서 전세가격이 부풀어 올랐다. 전세자금 대출은 LTV(담보인정비율)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받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급격하게 전세자금 대출이 늘었다. 전세자금이 대폭 풀리면서 매매가에 근접하는 전세들이 늘어났고 그 틈을 사기꾼들이 파고들었다.”

◇서민주택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정부

- 전세사기가 3억원 이하의 서민 주택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정부 정책이 아파트 중심이다. 서민주택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다. 서민들이 3억 이상의 집을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3억 이하 주택은 아파트는 거의 없고 대부분 빌라나 오피스텔이다. 3억 이하 주택이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한 대상이지만, 정책적 사각지대로 방치됐다.”

-서민주택이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됐다는 의미는?

“사기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30호 미만의 공동주택, 즉 빌라에 대한 분양은 제도권 밖에서 시행이 되고 있다. 주택법에 따라 ▲3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 ▲30가구 이상 단독주택 ▲30실 이상의 오피스텔 ▲분양면적 3000㎡ 이상 건축물 등에 대한 분양계약을 하거나 그 분양권을 전매하는 거래당사자는 관할 시·군이나 구청에 부동산 거래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일정 정도 행정관청의 통제를 받는다. 30가구 미만은 법의 사각지대이다 보니 분양 업자 또는 건축업자가 원가 3억원 주택을 5억에 분양하겠다고 한들 그것을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오랫동안 현장에서 중개업을 하시는 분들이 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알 수 있다. 지역 전문가들이 바로 공인중개사들이다. 현장 공인중개사들을 크로스체크 하면 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가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해자 구제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중개시장에서 사기극이 속출하는 동안 정부는 왜 뭐했나?

“지자체가 단속권한을 갖고 있다. 담당 공무원을 문제 삼기도 그렇다. 구청에 담당 공무원이 한 두명에 불과하다. 현장 단속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똑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 단체화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99.9%의 공인중개사는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극히 일부가 전세 사기극에 가담해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한다. 현장의 시장 교란 행위를 단속할 권한은 지자체에 있지만, 지자체는 그럴 능력이 없다. 지금의 정부 대책으로 막기도 역부족이다.

그래서 공인중개사들과 협조해서 단속을 하자는 것이다. 지난 10월 의원 입법으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법안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 단체로 지정, 앞으로 개업하는 공인중개사는 협회에 의무 가입하도록 했다. 협회는 윤리규정을 강화해 중개사들을 지도·감독할 수 있다. 또 ‘부동산 질서 교란행위’를 단속할 수 있고 회원이 법을 위반하면 시·도지사와 등록관청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도 있다. 협회가 당국과 함께 지역 공인중개사들의 자발적 제보를 바탕으로 불법행위를 단속할 수 있다. 그동안 전세사기가 발생한 지역의 중개업협회지부가 담당부서에 신고를 하면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공인중개사 책임보험이 연간 한도가 1억이다. 올해부터 2억으로 늘었다고 해도 너무 적은 것 아닌가?

“그동안에는 이렇게 한 사람이 여러 건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동산 계약을 할 때마다 건별로 책임보험에 가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협회 차원에서도 연구 용역중이다. 건별로 책임보험에 가입하려면 비용 문제가 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의 중개보수는 15만~20만원 정도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정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전세사기 예방 대책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정책이라는 게 기존에 해왔던 정책을 조금 보완하는 수준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부재하다.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30호 미만의 공동주택 분양 문제와 무자격 컨설팅 업자의 문제 등도 대책이 필요하다.”

-근저당과 확정일자의 우선순위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주택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하면 대항력이 생긴다. 전입신고는 그 다음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근저당은 바로 당일 날 효력이 발생한다. 세입자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등기부같은 경우는 접수 번호로 따진다. 접수 번호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것처럼 근저당과 확정일자, 전입신고도 시간대로 체크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에서는 특약으로 근저당이 확정일자 당일에 설정돼 있으면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제가 너무 복잡해진다. 등기부 등본에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세권 설정을 하면 채권이 물권이 돼 세입자의 권한이 강해진다. 전세권 설정을 하면서 선순위 채권 등에 대해 세입자가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은행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할 때도 경고메시지를 보낸다.

“저희 협회도 소속 업소에 스티커를 붙이고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꼭 체크해야 할 체크리스트도 만들었다. 교육도 필요하다. 국방부에 제대 군인을 대상으로 임대차 계약서 작성, 등기부등본 보는 법 등 기초적인 부동산 상식을 2~3시간 정도 교육하자고 제안했지만 답이 없다. "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왼쪽)과 부동산거래질서 확립 및 상생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에 치솟은 전세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하반기에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줘야 되는데 못 돌려준다든가 전세를 빼줘야 되는데 못 빼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집주인이 과거 보증금과 현재 시세의 차이를 계산해서 이자를 임차인들한테 줘서 시간을 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현재 일부 고가 주택에서 발생한 현상이지만,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저가 주택 구입자금 대출 확대 필요

-임대인들이 전세퇴거자금 대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게 한 두채면 될 테인데, 수십채, 수백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증금인하 요구가 이어지면 감당할 수 없다. 이런 현상들은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확산될 수 있다.”

-집값과 매매가 상승을 전제로 하는 무자본 갭투자가 한때 유행했다.

“2~3년 전에 한 사람이 수십채 수백채의 주택을 구입하는 사례도 많았다.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전세보증금 반환을 해주지 못하면 결국 사기가 된다. 전세계약을 하자마자 바지 사장에게 물건을 떠넘기는 조직적 사기와는 차이가 나지만, 전세보증금 미반환이라는 결과는 같다. 정부가 전세 사기에 대책을 집중하고 있지만 미반환 사고는 전세 사기보다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단속도 쉽지 않다. 내가 1억짜리 집을 사서 1억에 전세 계약을 할 때 세입자와 임대인이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정부의 개입여지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정부가 전세자금까지 대출해준 경우에도는 더욱 그렇다. 좀더 대책이 필요하다. "

-임대차 위주의 저가주택은 전세 가격이 매매가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전세는 1억짜리 주택이면 전세 금액이 한 70~80%선에서 형성됐다. 그런데 전세자금 대출을 해 줌으로써 전세가격이 9000만원, 1억원까지 올랐다. 70% 선에서 전세금이 형성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택구입 자금은 대출규제로 3억짜리 집을 살 수 없는데, 전세자금은 3억원까지 제한 없이 대출이 됐다. 이런 틈을 사기조직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전세자금 대출 제한을 가하기도 쉽지 않다. 청년층의 주거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대안은?

“전세대출의 한도를 정하고 나머지는 월세를 내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월세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보조금 지원책이 필요하다. 또 저가 주택 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저가 주택을 소유해도 아파트 청약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저가주택 구입시에 전세대출 만큼 지원책을 마련하면 굳이 위험한 전세로 살 이유가 없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