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일본 군사화에 백지수표 내주나?

김창수 2023. 5. 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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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핵협의그룹이 만들어진다는 것과 이를 위해 세 나라가 군사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한·미·일 협의에서 한국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하다.

서서히 안전핀이 뽑히고 있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가교이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은 가교 국가의 특징을 잘 살린 데서 비롯하였다. 지금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이 다리에 금이 가고 있다. 이러다가 다리가 무너지면 가교 국가인 대한민국의 특징이 크게 손상될 것이다.

일본은 꾸준히 군사력을 해외로 확장하려는 채비를 갖추어왔다. 지금 한국 정부는 일본 자위대의 팽창을 수용하고 있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다리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망한 아베 전 일본 총리는 전쟁 가능한 일본을 꿈꾸면서 자위대의 팽창을 추진해왔다. 아베는 본격적으로 동북아의 판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사무라이들이 꿈꾸어온 오랜 소망이 바로 동아시아로 군사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아베가 흔든 동북아의 판을 안정시키는 핀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가교인 한반도였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다리에 금을 내고 일본 열도로 떠밀려가고 있다. 인위적인 지각변동이다. 안전핀이 뽑힌 한반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5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워싱턴 선언이 한·미·일 협력으로 발전해나갈 것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은 일단 한국과 미국의 양자 간 베이스로 합의된 내용”이고,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에 따라 공동기획과 실행을 하면서 “먼저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또 일본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한·미 핵협의그룹(NCG)에 일본의 참여를 시사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목표를 말하는 것”이라면서, “한·미 간에 확실히 해놓고 그다음에 일본과 같이하는 것도 생각해야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도 일본의 NCG 참여 가능성에 대해 외교관 출신답게 직답은 하지 않았다. 한·미·일 안보 협력 차원에서 억제력 확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의견을 같이한다는 취지로 에둘러 말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한·일 간 협력 증대는 물론 (한·미·일) 3국 간 협력 증대에 대해서도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설왕설래하는 상황이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앞으로 한·미·일 세 나라가 핵협의그룹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보인다.

북한 핵 능력 강화에 대응하는 핵협의그룹 신설에 관해서는 지난 3월2일 일라이 래트너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차관보가 처음으로 시사했다. 그는 미국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북 핵 억지를 위해 ‘새 메커니즘과 새 협의메커니즘(new mechanisms and new consultative mechanisms)’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본 언론은 이를 한·미·일 핵협의그룹으로 분석했다. ‘새 메커니즘과 새 협의메커니즘’을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일 핵협의그룹 신설, 일본도 수용?

〈요미우리 신문〉은 내친김에 더 나아갔다. 한·미·일 핵협의그룹 신설이라는 미국의 구상에 일본도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8일자 ‘핵우산, 한·미·일 협의체 창설, 대북 억지력 강화…미 타진’이라는 제목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평시부터 핵 억제 관련 훈련 등을 둘러싼 협력 체제를 만들고, 유사시 한·일 양국의 협의를 바탕으로 대응을 판단하는 체제를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미국의 핵 사용 판단에 관여’하고 싶지만, 한국은 ‘유사시에 대비한 구체적인 핵 사용 협의’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렇게 한·일 사이에 있는 입장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즉, 일본은 미국의 핵 사용 판단에 ‘소극적 관여’라는 입장이지만, 한국은 실천적 핵억지력 구축 차원에서 핵 사용 협의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일본이 ‘소극적 관여’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본이 피폭 국가이고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고향이 히로시마이기 때문이다. 핵 협의체에 참석은 하되, 피폭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는 교묘한 태도이다.

5월7일 ‘한·일 역사정의평화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한·일 정상회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시사IN 신선영

〈요미우리 신문〉이 복수의 미국과 일본 소식통을 인용했다고 하지만 추가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결론을 내리기 위해 물밑에서 협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진행 중인 논의에 대해서 언론에 흘리는 미국과 일본 소식통들의 자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불확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알권리 충족이라는 언론의 소명을 다하는 차원에서 보도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렇게 ‘핵 사용’이라는 한반도 안보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고 보도가 나는데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깜깜무소식이라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차 한·미·일 핵협의그룹이 만들어진다는 것과 이를 위해 세 나라가 군사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한·미·일 프놈펜 선언을 통해 ‘미사일 경보 정보’에 대한 실시간 공유를 합의했다. ‘미사일 경보 정보’는 발사 원점과 비행 방향, 탄착 지점 등을 말한다. 5월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한·미·일 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다. 이 회담에서는 군사협력 범위를 더 넓혀 포괄적으로 ‘미사일 정보’로 확대하고 한·미·일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것을 논의한다. ‘미사일 정보’는 ‘미사일 경보 정보’에 더해 탐지·추적 정보, 교전 정보 등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어서 6월2일부터 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미·일 국방장관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조율할 것이다. 나아가 탄도미사일 대처와 잠수함 훈련 등 한·미·일 3국 간 훈련 확대도 포함될 것이다.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 강화는 핵협의그룹 신설과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미·일 핵협의그룹의 최종 그림이 어떻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3국 사이 군사협력을 위한 메커니즘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대외 진출을 꿈꾸는 자위대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2018년 독도 인근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노란 원)가 우리 해군 함정에 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 ⓒ국방부 유튜브 갈무리

정작 한·일 간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하는 해양 수색구조 훈련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8년 독도 인근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에 저공 위협 비행을 한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야심이 빚어낸 사건이다. 한·일 두 나라는 아직 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심도 여전히 변함없는 상태다.

강화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대한 대응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영토에 야심을 가진 나라와 군사협력을 할 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영토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담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과거사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토양이다. 독도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민족감정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반격 능력 보유, 2027년도 기준 GDP 2% 수준으로 방위예산 증액 등을 결정했다. 반격 능력 보유에 대해선 일본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미·일 안보동맹 아래서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가 불필요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부터 반격 시점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적 기지 공격 능력’으로 불리던 용어를 ‘반격 능력’으로 바꾸었지만, 자위권을 넘어선다는 논란도 있다.

일본의 반격 능력 확보는 북한에 관한 것이다. 일본 정부 내각은 반격 능력 행사가 일본의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하지만, 우리의 주권 및 안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반격 능력 보유 방침 결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의 발언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일본이 GDP 대비 2022년 방위 예산인 0.95%에서 2027년까지 GDP의 2%로 늘리는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고려했어야 했다.

‘안전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독도를 향한 일본의 영토 야심이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잘못된 인식은 현실적이면서도 잠재된 미래 위협이기도 하다. 반성하지 않고 전쟁 가능한 국가만 추구하는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영토와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가에 따라 일본이 안보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대륙과 해양의 가교 국가로서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안전핀 국가이다. 이 세 가지가 기준점이 될 수 있다.

2021년 1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 주둔지를 방문해 전차에 탑승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는 것에 대한 한·미·일 협의에서 한국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하다. 첫째, 평시 훈련이나 유사시를 가리지 않고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 일본은 이미 각종 지침이나 비밀계획을 통해서 유사시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을 검토해왔다. 둘째, 일본의 대비 능력을 키우기 위한 미사일 경보 정보 교환을 하더라도 군사정보 교환은 금지해야 한다. 셋째, 북한에 대한 일본의 반격 능력 행사에 한국의 사전 동의를 포함하여 선제공격을 제약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반대로 한·일 두 나라가 추구해야 할 것은 워싱턴 선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외교’이다. 지금 한·미·일이 논의 중인 군사협력의 수준은 무한 군비경쟁을 통해서 안보 딜레마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3국 군사협력 강화가 도리어 주변국들과 충돌하여 우리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의 군사화에 백지수표를 내어주는 듯한 상황은 미래의 안보 불안 요소가 될 것이다.

전쟁 중에도 대화가 필요하고, 미·소 대결이 극에 달했던 냉전 시기에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파국을 최소화하고, 또 다른 미래를 향한 씨앗이 되었다. 대결과 대립의 분위기는 고조되는데 이러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결 분위기에서 일본의 군사 팽창을 묵인하면 한반도의 남쪽을 일본 열도로 밀어넣는 판의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신생대 3기에 있었던 판의 변동으로 한반도에 밀착해 있었던 일본이 떨어져 나가서 지금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한다. 그로부터 2000만년이 지난 지금은 한반도 남쪽이 일본열도를 향해 달라붙고 있다. 신생대 때는 지질학적인 변동이었다면, 지금은 지정학을 오독한 인위적인 지각변동이다. 교량 국가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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