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불가촉천민’의 불결한 노동, 고용주는 ‘선량한 당신’[책과 삶]
살인 병기 조종하는 드론 전투원
살해·파괴·폭력이 동반된 일들
···
열악한 노동 환경·저임금 외에
각종 비난과 우울증·수치심까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위임’된다
···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쓴
현대판 ‘미국 불가촉천민’ 보고서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지음·오윤성 옮김|한겨레출판|496쪽|한겨레출판
<더티 워크>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은 불결하고 비윤리적이어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노동에 대한 통렬한 기록이다. ‘통렬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더티 워크’가 열악한 노동에 관한 보고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마땅찮은 노동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위임’한 것임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경멸하고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그 노동에 연루돼 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더 나은 선택지가 없는 이들이다. 가난하고 덜 교육받은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교도소 정신병동에 수감된 정신질환자들을 감시하는 교도관들, ‘정밀 타격’이란 이름 아래 뭉개진 화면을 보고 ‘살인’을 하는 드론 전투원들, 도살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21세기의 새로운 ‘불가촉천민’이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이얼 프레스는 <더티 워크>에서 이 같은 직업이 처한 열악하고 폭력에 노출된 노동여건과 수치심·죄의식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동시에 그 일을 만들고 장려하는 사회·정치적 구조를 보여준다. 더티 워크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김으로써 이득을 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또 더티 워크의 비도덕성을 쉽게 비난하면서도 그 일을 개선하거나 없애는 것엔 별생각 없는 ‘선량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더티 워크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과 비인간 동물,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주는 노동이자 폭력을 행사하는 노동이다. 둘째, ‘선량한 사람들’이 보기에 더럽고 비윤리적이다. 셋째,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낙인찍혔다’고 느끼게 하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이뤄진다. 그 일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명시적으로 그에 동의하진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더티 워크에 뒤따르는 폭력과 고통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있다.
저자는 에버렛 휴스의 말을 인용해 ‘선량한 사람들’을 수동적 민주주의자로 칭한다. 이들은 “즐겁고 무심한 대화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절대로 아무것도 할 의도가 없는 사람”이며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문제 있는 관행이 판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의 새로운 정신병원’ 교도소에서 일하는 이들
저자는 플로리다주 데이드 교도소로 떠난다. 플로리다주는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교정시설 수감자가 많은 주다. 데이드 교도소의 정신질환 치료시설인 ‘전환치료병동’에서 일하는 상담사 해리엇 크르지코프스키를 만난다. 해리엇은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학대하는 것을 목격한다. 상부에 보고했지만, 조치가 취해지는 대신 교도관들의 은밀한 보복이 따랐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다. 레이니라는 환자가 샤워실에서 교도관들이 뿌린 80도가 넘는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고 사망한 것이다. ‘샤워실 치료’는 그동안 수차례 이뤄졌지만 사람이 죽은 것은 처음이었다. 해리엇은 곧 수사가 시작되리라 생각했지만, 사건은 은폐된다. 해리엇을 비롯한 상담사들은 ‘침묵’한다. 이를 문제 삼는다는 건 곧 해고를 뜻했기 때문이다.
해리엇은 처음부터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플로리다주 지역 경제를 파탄 냈고, 구할 수 있던 유일한 일자리가 교도소 상담사였다. 남편은 실직 상태였기에 해리엇은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강박증을 갖고 있던 다른 재소자가 레이니의 죽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언론에 제보하면서 사건은 밖으로 알려진다. 해리엇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병동에서 어떤 음식물도 먹을 수 없었고,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졌다. 극심한 무력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일을 그만둔다.
레이니에게 뜨거운 물을 퍼부은 교도관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 무엇이 이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게 했을까? 저자는 미국이 어떻게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는 대신 감옥으로 몰아넣었는지 설명한다. 탈시설 운동, 국가적 긴축 재정, 징벌적 형사처벌 정책이 맞물리면서 감옥에 갇힌 정신질환자 수는 폭증했다. 이들 죄목은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경범죄인 경우가 많았다. “교도소는 미국의 새로운 정신병원”이다. 2014년 미국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가장 많이 수용한 시설은 병원이 아니라 구치소 또는 교도소였다.미국 치료권리옹호센터는 교도소 학대의 진짜 원인은 “공공 정신질환 치료 체제를 재정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이 사회”라고 주장한다.
사회가 감옥으로 밀어넣은 정신질환자들의 문제는 교도관의 손끝에서 터져나왔다.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교도소는 적은 예산으로 치르는 전쟁과 무척 닮았다.” 저자가 만난 한 교도관은 “돈이 부족한 사람이 교도소를 통제할 유일한 방법은 잔인성과 위협과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플로리다주의 교도관 임금은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훈련·급여·인력 충원에 돈을 쓰지 않는 시스템에서는 너그러운 교도관마저 폭력적으로 변했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정신질환자들은 급증했지만, 교도관들은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법을 훈련받지 못했다.
교도관은 저임금에 불명예스러운 직업이다. 교도소들은 외딴 시골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그런 지역의 일자리는 드물다. 교도소는 월급은 낮지만 수당을 주기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에 속한다. 그렇게 교도관이 된 이들은 저임금, 과밀 수용, 부족한 인력 때문에 극한 상황에 내몰린다. 교도관은 고혈압, 이혼, 우울증, 약물 남용, 자살 위험률이 높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교도관 평균 기대수명은 58세이고, 자살 위험률은 다른 직업군 평균보다 39%나 높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은 34%로 군인과 맞먹었다.
하지만 교도관들이 겪는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자본의 논리를 따른 교정 업무 민영화가 교도소를 더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플로리다주는 레이니가 고문 끝에 사망한 2012년, 웩스퍼드와 코라이존이라는 회사에 교도소 의료서비스를 넘기고 대가로 13억원을 지급한다. “민영화의 결과 중 하나는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대 뒤편’으로 더 깊이 숨겨진다는 것, 어떤 행위를 해도 책임질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사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교도소 의료사업 민영화 후 7개월간 사망한 수감자 수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중증질환으로 외부 병원에 이송된 재소자는 47% 감소했다.
정신질환자 치료에 돈을 쓰기 싫은 주정부와 정치인들, 민영화로 돈을 버는 사기업, 이에 무관심한 시민들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한 교도관은 말한다. “일반 시민들이 죄수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내지 않으려 한다.”
‘정밀 타격’이란 이름의 살인···‘조이스틱 부대’ 드론 전투원
전장에서 동떨어진 기지에서 드론이 보내온 영상을 분석해 ‘표적 암살’을 돕는 드론 전투원 또한 ‘더티 워커’들이다.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는 대가로 도덕적 비난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바그다드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유출된 포로 학대 사진으로 고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미국은 드론을 이용한 ‘정밀 타격’으로 전쟁 방식을 바꾼다. 고문이 미국인들 손에 피를 묻힌 느낌을 줬다면, ‘정밀 타격’은 훨씬 더 깨끗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사실상 표적 암살이며, 승인받지 않은 처형이다. 무장한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드론이 보내온 깨진 화소, 흐릿한 영상 때문에 공습 대상이 됐다. 드론 공습은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오바마 정권은 드론 공격을 크게 늘렸고, 트럼프 정권은 첫 2년 동안 오바마 정부 8년간 횟수를 넘어서는 공습을 실시했다.
드론의 ‘정밀 타격’은 평범한 미국인들을 전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저자는 징병제 폐지와 미군의 비밀주의, 미국 병사가 사망할 위험이 없는 ‘리스크 없는 전쟁’이라는 점이 사회적 무관심을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누구에게, 왜 폭탄을 떨어뜨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구실을 제공했다. “굳이 자국의 물리력 행사를 제한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 나라 국민에게 주어진 좋은 해결책”이었으며 미국인은 “미국이 지리적 제한 없이 마음껏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론 전투원에게 살인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드론 영상을 통해 조각난 시체, 시신을 수습하는 가족들, 예상된 표적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의 모습을 마주했다. 박격포를 든 남자로 보였던 사람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여자인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반전운동가에게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조이스틱 전투원’으로 폄하되며 참전 군인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인정도 박탈됐다. 악몽에 시달리고 이혼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기밀 유지 때문에 자신이 겪는 고통을 나눌 수도 없었다. 저자는 이들의 고통을 ‘도덕적 외상’이라고 설명한다. 도덕적 외상은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위반하는 행위를 목격하거나 수행했을 때 겪는 것으로 내적 갈등과 양심의 가책을 수반한다. 저자는 더티 워크를 하는 노동자 대다수가 도덕적 외상이라는 산업재해를 당한다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드론 전투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 책에는 낙후된 지방 소도시에 살다 먹고살기 위해 드론 전투원이 된 헤더의 삶과 일을 쉬면서 반전시위를 벌이는 볼로메의 삶이 대조되어 나온다. 반전시위대는 교육받은 중산층이 많았지만, 드론 부대에는 침체된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들이 많았다.
저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인용한다.
“사회의 일부 구성원에게 다른 좋은 선택지가 없다면, 입대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경제적 곤경에 의해 징집되는 것일 수 있다. 징병과 모병은 서로 다른 종류의 강제를 구사할 뿐이다. 전자는 법이 강제하고, 후자는 경제적 곤경이 강제한다.”
가난과 폭력의 관계는 정비례 곡선을 띤다.
‘고문당하는 몸’ 도살장 이주노동자
저자는 도살장 이주민 노동자와 정육산업도 들여다본다. 멕시코 출신 플로르는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던 의붓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미국의 닭고기 정육공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라틴계 이민자와 흑인으로 채워진 공장에서 이들이 잘라내는 동물의 살처럼, 노동자들도 ‘고문당한 몸’이 된다. 화장실 갈 시간도 보장받지 못해 작업복 안에 바지를 입고 선 채로 오줌을 싸는 여성 노동자도 있다. 도살장은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백인이 유색인을, 관리자가 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이 성원권을 갖지 못한 사람을, 소비자 사회가 납품업체를, 자본주의가 인간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착취의 연쇄고리를 보여주는 곳이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의 산물”이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필수노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티 워크를 결정하는 주요인은 ‘불평등’이다. 낙인·수치·트라우마·도덕적 외상 등은 가난한 계층에 집중된다. 더티 워크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대와 책임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덮고 한국 사회의 ‘더티 워크’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책에 언급된 교도관, 도축장 노동자(농어촌의 힘든 노동이 이주노동자들 차지가 되고 있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더티 워크의 핵심적 특징이 있다. 보이지 않아서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무지에 대한 깨달음은 앎을 위한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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