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대단히 부담스러운 기재부 기사 쓰기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던 후배 얘기다. 의원실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우리 의원님이랑 같이 일하기 너무 힘들어요. 어제는 질의서가 맘에 안 든다면서 그냥 내가 다시 쓸 테니 퇴근하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퇴근했더니 전화가 와서 퇴근하라고 진짜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 정말 같이 일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 표시된 언어와 실제 의미가 다르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이 발생하게 된다.
세수결손이 발생했다고 한다. 3월 말까지 전년보다 24조 원의 국세가 덜 걷혔다. 세수결손이 생기면 현금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해결 방법은 둘 중에 하나다. 세입을 늘리거나 세출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세입을 늘리는 방법은 증세 하거나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증세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결국, 세입 확충방안은 국채 추가발행이 유일하다. 그런데 올해 국채 발행 규모는 지난 예산안 확정시에 국회에서 이미 그 한도를 정했다. 국회 동의 없이 국채발행 한도를 늘릴 수는 없다. 국채 발행한도 증액을 국회에 요청하는 행위는 추경(세입 감액 경정)을 통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각 사업별 지출액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이미 확정했다. 정부가 임의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불요불급한 사업 지출액을 줄이고자 한다면 국회동의가 필요하다. 역시 추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매일 같이 추경은 없다고 한다. 시장은 추경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재부는 추경은 없다고 한다. 혼란이 생긴다. 기재부가 정말로 추경을 안 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 상황에서 열심히 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지 알 수 없다. 그럼 세수결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물어보면, '자연스러운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불용'이 무엇일까? 정부는 국민의 대표가 확정한 사업별 지출금액을 임의대로 덜 써서 불용을 만들면 안 된다. 불용을 종용한다면, 국회의 예산심의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런 원칙을 잘 아는 추경호 부총리는 '강제불용은 없지만, 자연스러운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불용을 활용하겠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말을 일선 공무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적절하게 알아서 불용액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원칙대로 정해진 지출 사업을 완수하고자 노력해야 할지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전해야 하는 언론이다. 시장의 예측과는 달리 기재부 주장대로 정말로 추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또는 강제불용은 나쁜 것은 확실하지만 자연스러운 불용은 추구해도 가능한 것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KDI 등 하반기 경제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는 여전히 올해 경제성장은 상저하고라며 하반기에 세수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의 매일같이 모든 기재부 관료가 일관적으로 추경은 없다고 강력하게 말하니 추경을 예측하는 기사를 쓰기에 대단히 부담스럽다.
특히, 하반기에도 법인세수가 증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1분기 기업실적은 대폭 하락했다. 특히, 본예산 통과 이후 반도체 세액공제가 추가 확대된 부분은 본예산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반도체 등 세액공제 확대에 따라 하반기 법인세 실적이 하락할 수 있다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한 기재부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자님, 법인세 중간예납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원칙적으로는 올해 법인세가 줄지 않습니다.” 기재부 관료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기자는 대단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반도체 세액공제 등이 확대가 되면 '원칙적'으로는 법인세가 줄지 않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줄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세수가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칙적으로 줄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기재부 관료의 화술은 놀랍다. 올해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을 작년 세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올해 상반기 실적에 따라 중간예납 금액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처럼 법인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중간납부 금액을 최소화하고자 올해 실적에 따라 신고하게 되니 하반기 법인세수는 반도체 등 세액공제 확대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줄 수밖에 없다.
정부관료가 아무리 시장의 예측과는 달리 “추경은 절대 없다.” “원칙적으로는 줄지 않는다.” 심지어는 “잘 몰라서 그런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를 전하는 기자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전문 관료보다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아마추어리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본예산 확정 이후에 반도체 공제를 대폭 확대했는데 세수가 '원칙적'으로 줄지 않는다는 말은 의심해야 한다. 기재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부부처 공무원에게 '강제불용은 말고 자연스러운 불용'을 활용하자고 하면 사실상 불용을 종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기재부는 줄곧 불용이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요청해 왔다. 이러한 상식에 맞춰서 기재부 발언을 해석하는 것이 옳다.
상황에 따라서 모호한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외교에서는 이를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치인들도 간혹 모호한 화법을 구사해야 할때도 있다. 그러나 관료는 항상 명확한 언어를 구사해서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정작 전략적 모호성을 지켜야 할 외교분야에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반대로 정책에서는 외교적 모호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관료의 모호한 발언을 상식에 맞춰 해석하는 저널리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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