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컵라면 먹으며 이야기꽃...누리호 발사 성공 주역의 소박한 자축연

송복규 기자 2023. 5.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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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늦은 발사에 제대로 식사할 시간도 없었어
컵라면·컵밥 350개씩 준비해 업무 중 식사 해결
밤샘 작업 탓에 대부분은 숙소行… 몇몇은 ‘치킨 특식’ 즐기기도
저녁 8시가 지나서야 기숙사 3층 공용주방에 사업책임자를 포함해 몇 명 보직자들이 식당에 부탁해서 받아온 도시락과 밑반찬을 안주 삼아 한잔하기 위해서 모였다.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밥과 반찬은 그대로 남고 빈 술병만 늘어났다. 성공 후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그렇게 취기가 오르지는 않았다. (중략)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 분위기가 고조될 때쯤 누군가가 ‘누리호’ 발사 운용을 위해 단체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우리 모두 티셔츠에 각자의 사인을 했다.
"우리는 하나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
기쁨의 외침과 함께, 2022년 6월 21일의 만찬은 라면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당시를 기록한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누리호, 우주로 가는 길을 열다' 中

지난 25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만든 실용위성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무사히 궤도에 올려놓으며 첫 실전발사를 성공으로 장식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 연속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우주발사체에 필수인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차례 성공을 경험했다고 해서 여유만만한 발사는 아니었다. 두 차례나 발사가 연기된 작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갑작스런 지상장비의 통신 이상으로 발사가 한 차례 연기됐다. 누리호를 발사대에 기립한 채 문제의 원인을 찾느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연구진들이 말 그대로 날밤을 샜다. 항우연에 따르면 밤새 이어진 작업이 끝난 건 25일 오전 5시 무렵이었다.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모습. 발사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우연 연구진은 현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한 뒤 한두 시간만 겨우 눈을 붙이고 오전 11시 무렵부터 다시 발사 준비에 나섰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 끝에 누리호는 25일 오후 6시 24분 정확하게 발사돼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목표 궤도에 올려놓고 18분여의 비행을 마쳤다.

누리호가 3차 발사도 멋지게 성공하자 항우연 연구진을 향해 격려와 응원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항우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튜브를 통해 진행한 현장 생중계 영상에는 항우연 연구진에게 ‘소고기’ 회식을 쏘라는 댓글도 이어졌다. 항우연 연구진 노력과 누리호가 보여준 성과에 비하면 소고기도 아까울 게 없다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를 지켜본 항우연 연구진은 25일 저녁에 어떤 메뉴를 택했을까. 정말 소고기라도 먹으며 회포를 풀었어야 할 것 같지만, 이날 항우연 나로우주센터 직원들의 저녁 메뉴는 컵라면과 컵밥이었다. 항우연 나로우주센터는 모두 350개의 컵라면과 컵밥을 준비했다고 한다.

발사 이후 누리호의 궤적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던 최용태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발사 시간이 2차 발사 때보다 늦다보니 후속 처리를 하고 보고서도 쓰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며 “컵라면이나 컵밥으로 중간에 식사는 간단하게 때웠고, 오후 9시쯤 퇴근하고서는 전날 밤을 샌 탓인지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잠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누리호 2차 발사는 그나마 발사 시간이 오후 4시였기 때문에 발사 성공을 확인하고 업무를 마무리한 뒤에도 항우연 연구진이 모여서 식사라도 할 여유가 있었다. 오승협 항우연 책임연구원이 책에서 쓴 것처럼 반찬에 라면을 안주삼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축하할 수는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3차 발사는 발사 시간이 6시 24분으로 2차 때보다 2시간 24분이나 늦어졌고, 전날 대부분의 연구진이 밤샘 작업을 하느라 따로 축배를 들 여유도 없었던 셈이다.

작년 6월 21일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직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단체 티셔츠에 성공을 자축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는 모습.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그래도 나름의 ‘특식’을 즐긴 연구진들도 있었다. 메뉴는 소고기가 아닌 치킨이었다. 얼마 전 나로우주센터 근처에 치킨 가게가 하나 문을 연 덕분에 몇몇 항우연 연구진은 발사 성공 이후 치킨을 함께 먹으며 발사 성공을 자축했다고 한다. 발사대를 담당한 강선일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발사대는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늦게 나오는 곳”이라며 “25일도 밤 9시가 넘어서 퇴근했는데 미리 치킨을 주문해 둬서 컵라면과 컵밥과 함께 다같이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재밌는 건 이 치킨집의 사장도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이라는 사실이다. BHC고흥나로점의 김상민 사장은 누리호에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엄빌리컬(umbilical·탯줄)을 해체하는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사장은 “25일 오후 8시 30분쯤 치킨 29마리 포장 주문이 들어왔다”며 “이번에 항우연 연구진이 모두 고생이 많았고 잘 마무리돼서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했으니 이제 항우연 연구진도 발 뻗고 쉴 수 있는 걸까. 무얼 가장 하고 싶은지 항우연 연구진에게 물었더니 ‘집에 가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누리호 개발과 발사 과정을 진두지휘한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전날 밤샘 작업을 하면서 25일에는 연구진 모두 기운이 빠져 있는 상태였다”며 “제어 시스템이 오류가 났을 때는 집에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도 했는데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다. 이제는 집에가서 좀 쉬고 싶다. 2주 만에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발사체 총조립을 담당한 원유진 항우연 책임연구원도 “집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그는 “나로우주센터에 출장 내려온 지가 3개월이 됐고, 마지막으로 집에 들른 것도 보름이 지났다”며 “매일 연구진들끼리 모여서 오늘 신을 양말과 속옷만 준비하고 더는 빨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발사가 성공했다고 해도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나로우주센터를 떠난 누리호를 추적하는 건 제주도의 추적 레이더와 남태평양 팔라우 추적소가 담당한다. 팔라우 추적소에는 발사 3주 전부터 항우연 연구진이 파견돼 발사를 준비해 왔다. 최용태 책임연구원은 “팔라우 추적소 직원들이 귀국하는 비행기를 27일 저녁으로 예약해 뒀는데 만약 발사가 다음주로 밀렸다면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신나서 귀국하고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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