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와인으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선한 외침’ 넬레만 뗌쁘라니요-모나스트렐

유진우 기자 2023. 5.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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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공산품일까, 농산물일까.

흔히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을 떠올려 보라하면 그리 키가 높지 않은 포도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광활한 초원, 그 나무 사이를 가끔 뛰어다니는 조그만 들짐승들, 푸른 잎사귀를 자랑하는 포도나무가 즐비한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 포도 농사는 생각만큼 친환경적이지 않다. 오히려 순리를 거스르는 편에 가깝다.

효율적으로 포도 수확량을 높이려면 으레 다른 농산물이 그렇듯 화학 비료를 다량 사용해야 한다. 곰팡이나 진딧물 같은 병충해를 값싸게 막으려면 당연히 농약도 써야 한다. 포도는 건조한 곳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서 자랄 수록 당도가 올라가는데, 뜨겁고 매마른 환경에서 포도를 키울만큼 충분한 물을 구하려면 멀리서 수로를 끌어오거나, 땅을 파헤치는 관개 농사가 필수적이다.

사뭇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와인 산업이지만, 뒤에서는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행위가 이어진다. 특히 대량 생산에는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과학 기술이 따라온다. 해마다 수백만병 이상을 판매하는 거대 브랜드 와인일수록 이런 성격은 뚜렷해진다.

일부 와인 생산자들은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거부했다.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 와인 생산자들은 20세기 중후반부터 공장식 와인 생산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코카콜라처럼 와인을 만드는 대신, 집에서 동치미를 담그듯 술을 빚는다.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화학 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법을 발명하고,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지 20~3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화학비료의 폭발적인 효과를 누렸던 다른 농부들은 이들을 ‘바보’라고 손가락질 했다. 그래도 자연주의적 와인 생산자들은 수십년 내내 화학비료를 거부하고 자연비료만 사용한다든가, 달의 움직임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포도 생장을 돕는 대체 농법을 꾸준히 연구했다.

이들의 노력은 50년이 지난 무렵에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전문가들은 점차 화학비료가 지하수와 토양 오염의 주범이라고 꼬집기 시작했다. 농산물이 채 흡수하지 못한 화학비료는 도리어 토양을 황폐화하고, 지력을 약화시킨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동안 무분별하게 화학비료를 사용했던 와이너리들도 2000년대 이후부터는 심각함을 깨달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매년 밭을 유기농으로 되돌리는 데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는 전 세계 포도밭 가운데 7%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포도밭이다.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그래도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13%에 달한다.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내추럴 와인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받은 넬레만 뗌쁘라니요-모나스트렐은 네덜란드인 와인 생산자 데릭 넬레만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한 와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스페인 발렌시아에 둥지를 틀어 만든 와인이다.

넬레만이 만드는 모든 와인은 유기농 인증과 비건 인증을 받았다. 90년대부터는 유기농은 말 그대로 제초제나 살충제,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비건 와인은 말 그대로 와인 양조 과정에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부분 와인은 포도로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와인 양조 과정에는 여러 동물성 제품이 여과나 청징(술을 맑게 만드는 기술) 과정에 쓰인다. 주로 우유나 갑각류 껍질, 달걀 흰자에서 뽑아 낸 단백질, 혹은 생선 부레 추출물 같은 성분이 주로 쓰인다. 비건 와인은 이런 요소를 전부 배제한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제품이라도 유기농이나 비건 인증이 붙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기 마련이다. 넬레만은 스페인 발렌시아라는 덜 알려진 산지에서 와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췄다.

그렇다고 포도의 품질에 있어선 타협하지 않았다. 이들이 포도를 주로 가져오는 밭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관리할 만큼 청정한 900미터 고지대 호세스 데 카르브리엘 자연 공원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올리브와 아몬드 나무로 둘러싸인 지역에 있어 자연적으로 병충해를 예방하기 좋다.

토양 역시 백악기와 쥬라기 시대부터 켜켜이 쌓인 오래된 퇴적층이다. 이런 땅에서 유기농법으로 자란 포도는 오래도록 땅이 간직해온 다양한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와인에도 이 미묘한 맛과 향이 상당 부분 반영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 내추럴 와인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추럴 와인은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황 외에 소량의 이산화황을 변질 방지 차원에서 첨가했기 때문이다. 유기농법을 사용한 유기농 와인 혹은 오거닉 와인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수입사는 리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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