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후 쇼핑몰서 임시 거주 중… 가족과 사는 집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좋아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김종연 지음 | 자음과모음 | 292쪽 | 1만5800원
“해피해피해피 이마트 이마트!” 쇼핑몰 노래가 울려퍼지는 이곳은 피난처다. 대규모 지진, 방사능 유출…재난이 세상을 휩쓴 다음 생긴 임시 거주처 중 하나. 소설은 식량 배급을 비롯한 쇼핑몰 생활의 질서가 이미 확립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주기적으로 들리는 경쾌한 쇼핑몰 노래가 듣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지만, 잠시뿐이다.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여러 인물들의 삶이 흑백영화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누군가 다투고 화해한다. 화자 ‘성결’은 이런 쇼핑몰에서의 삶이 오히려 즐겁다. 그에게 재난보다 무서운 것은 가족과 함께했던 과거다. 힘들 때 가족에게 위로받지 못했고, 피난처를 찾던 도중 가족을 떠나 혼자 움직였다. 가족은 성결을 끝까지 힘들게 만든다. 그가 피난처를 떠날 수 있는 공동주택 추첨에 당첨되자, 가족이 거기에 빌붙는다. 이에 충격받은 성결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성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이 있는 공동주택으로 가게 된다. 그는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고 되뇌이며 또다시 살아간다.
2011년 등단한 시인의 첫 소설로, 작년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받았다. 비관과 낙관 사이를 오가며, 그저 삶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물들은 재난을 딛고 일어서지도, 완전한 고통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 모습이 각자의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선례 없는 재난 상황을 그리고 있음에도 소설 속 내용이 익숙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저 하루를 버텨낼 작은 희망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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