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장애인 문제, 나도 안다”는 당신께
몇 년 전 프랑스에 갔다가 흔히 ‘난장이’라 하는 왜소증 여배우가 주인공 요정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서구 영화에서 왜소증을 겪는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반지의 제왕’엔 아주 많이 나왔고, ‘해리포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사람들을 한국 일상 생활에서 보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라가 장애인들에게도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농인 부모를 두어 수화를 사용하는 청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에 관한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쓴 사람이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에 이은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창비)은 전작의 문제 의식을 조금 더 부드럽게, 그리고 조금 더 넓은 분야로 확장한 책이다. 좁게는 장애인 문제이지만, 넓게는 언제든지 약자의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왜 이 책을 권하는가? 우리는 ‘잘난 사람’과 ‘정상’이라는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선진국은 소위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에게 편한 사회다. 잘난 사람만 편한 곳은 오히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가 아니겠는가? ‘왜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는데, 인권 문제는 오히려 후퇴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다가 이길보라의 책을 읽으면서 현 상황을 좀 이해하게 되었다.
에세이집의 마지막 글은 ‘내 이야기는 사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것이 책 제목이 되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글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거대 담론 가운데서 ‘사적’ 이야기 혹은 ‘작은’ 이야기로 치부되었던 쓰라렸던 경험의 에너지가 농축된 듯하다. ‘에이블리즘에 반하여’는 감각을 잃게 되는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이 주제다. 장애인의 사랑과 감각을 정면으로 다룬다. 신선했다. 일상적인 소재들이 아니기는 하지만, 독서는 원래 간접 경험을 늘리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한국이 양적으로가 아니라 질적으로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길보라의 책을 권하고 싶다. “나도 알아”라는 말을 남발하는 엘리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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