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당 하나 날리고도 책임 안 진 선관위

박수찬 기자 2023. 5.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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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선관위 고발로 당 공중분해됐지만
관련자 모두 대법원서 무죄 판결
선관위, 유감 표명조차도 안 해
26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안으로 선관위 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20대 총선 두 달 후인 2016년 6월 9일, 중앙선거관위원회가 A4 두 장짜리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개 업체 대표로부터 총 2억382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이를 허위로 회계 보고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2명과 선거사무장 등 5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전날 검찰에) 고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국민의당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의 시작이었다.

창당 두 달 만에 치른 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며 단숨에 제3당에 올랐던 국민의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고발된 박선숙·김수민 의원은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안철수·천정배 공동 대표가 물러났지만 당내 혼란이 계속됐다. 결국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하며 국민의당은 창당 2년 만에 해산했다. 당시 국민의당 관계자는 “선관위 고발은 국민의당에 사망 선고였다”고 했다. 선거 관리 기구쯤으로만 보이는 선관위가 마음만 먹으면 유력 정당 하나쯤 공중분해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도 있다.

선관위로부터 고발된 국민의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1·2심에 이어 2019년 7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3년 만에 이뤄진 명예 회복이지만 국민의당은 이미 공중분해된 후였다. 수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졌지만 정치권에선 이 사건으로 가장 덕을 본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이 이 사건으로 치명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특정 정당을 겨냥한 선관위의 고발을 두고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선거 범죄를 감시·고발하는 것은 선관위의 책무다. 하지만 총선 두 달 만에 이뤄진 고발이 충분한 조사와 검토로 이뤄졌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확인할 길이 없다. 당사자였던 국민의당 관계자들조차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난 이후에도 선관위가 유감 표명도 안 했고, 선관위에서 누가 책임을 졌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선 ‘소쿠리 투표’나 최근 자녀 특혜 채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 기구’임을 내세워 직무에 대한 외부 감사를 받지 않는다. 문제가 터져도 국민은 물론 정치권조차 정확한 실상을 알기 어렵다. 한 여당 의원은 “누가 사무총장이 되든 견제받지 않는 선관위 운영 방식이 바뀌지 않은 한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선관위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대중의 불신은 특정 기관 한 곳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관리하는 선거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한번 의심받으면 국가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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