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허위를 걷고 실질을 숭상하라

봉달호 편의점주 2023. 5.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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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부착된 불투명 시트지 등
‘新양반사회’ 악습 하나씩 고쳐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이제는 민생에 전념할 시간

죽음의 시트지를 떼어내게 되었다. 지난 17일,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심판부는 편의점에 부착된 불투명 시트지를 제거하고 금연 광고로 대체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이로써 밤중 등대 역할을 하는 편의점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어 근로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했던 시트지는 희대의 블랙코미디 가운데 하나로 막을 내렸다. 이미 사람이 죽은 뒤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든 이 규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허위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법규에 따르면 편의점 내부 담배 광고는 외부에 노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러 바깥을 향하는 광고 형태를 제재하는 것으로, 내부가 자연스레 보이는 현상은 융통성을 발휘할 일이다. 규정을 만든 이유는 무시하고, 현실에 눈감은 채, 자구(字句)를 기계적으로 해석해 전국 편의점에 시트지가 붙게 만들었다. 금연 정책의 성과를 과시하려고 엉터리 규제를 만들지 않았을까.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돌아보면 그 시절에 그런 일이 한두 건이었나. 이른바 탈원전을 한다면서 멀쩡히 돌아가는 원자력 발전소를 멈추고 태양광이라는 허위로 대체하려 했다. 어쨌든 나랏돈 들여 만든 보(洑)를 또 일부러 때려 부수고, 내 집을 장만하고픈 사람들의 욕망을 무시한 정책을 고집스레 남발해 집값을 폭등하게 만들었다. 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물가도 올라 결과적으로는 임금 상승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데 당장 받는 돈만 늘면 좋다는 식의 최저임금 폭등 정책은 ‘조삼모사’의 뜻을 알려주는 인류사적 사례로 남을 만하다.

인류학 박사 김은희는 실질은 없고 이념과 명분을 앞세우는 이런 풍경을 ‘신(新)양반사회’라 정의한 바 있다. 시대는 21세기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는데 갓 쓰고 뒷짐 지고 뒤뚱거리는 신흥 사대부들의 복고 통치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했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이들의 상투를 잘라내겠다는 국민의 선택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허위를 걷고 실질을 숭상하라.

편의점에 부착된 불투명 시트지를 떼게 돼 업계 관계자들은 환호한다.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는 단순히 뗐다는 결과 자체에 있지 않다. ‘합리적 요구를 합리적 방식으로 제기하니 들어 주더라’는 점에 있다. 확성기 켜고 차도(車道) 점거하고 성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지는 않았어도, 숱한 사람들이 문제를 알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정부에 건의를 제출했다. 전문가로 구성된 규제심판부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렸다. 평범한 시민들이 바라는 개혁의 절차와 방향은 이런 것이다.

필자도 그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뿌듯함을 느낀다. 본 지면에 편의점 시트지와 관련한 칼럼을 쓴 것을 계기로 국민의힘 민생119 특위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관련 사항을 건의했다. 과연 바뀔까 싶었는데 정말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짜릿했다. 편의점이나 식당, 카페에서 근무하려면 흔히 ‘보건증’이라 부르는 건강진단결과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보건소에서는 3000원, 일반 병원에서는 2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이에 대해서도 민생특위는 무료화를 제안했다.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건강진단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취업자 본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다. 이를 무료화 않고 다른 무상(無償)을 남발해 무엇하겠는가. 정부에서 긍정적 답변이 돌아와 기뻤다.

출범 한 돌을 넘긴 윤석열 정부에 국민이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바란다. ‘합리적 요구를 합리적 방식으로 하니까 통하더라’는 세상을 원한다. 작은 변화와 낮은 환호가 쌓이다 보면 큰 변화를 이룰 힘도 생길 것이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민생에 전념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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