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반도체 새판짜기… 차세대 칩 함께 만든다
美상무장관-日경산상 美서 만나 오늘 반도체 개발 공동성명 발표
中견제 美, 韓-대만보다 日과 협력
“자국 산업 육성… 韓 긴장 불가피”
미국과 일본이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한 공동 로드맵을 만들기로 했다. 중국발(發) 경제안보 위험을 최소화하는 디리스킹(derisking·탈위험)과 함께 동일한 가치를 지닌 국가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공급망 새판 짜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6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날(현지 시간) 미 디트로이트에서 회담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성명을 발표한다. 니시무라 장관은 디트로이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장관회의 참석차 방미했다. 이 성명에는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 신약, 인공지능(AI), 오픈 랜, 양자컴퓨팅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기지국 통신 기술 오픈 랜은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할 때부터 우려했던 정보보안과 관련된 사안이다. 또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해 미 정부가 설립하는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CT)와 일본 정부가 지난해 세운 기술연구조합최첨단반도체기술센터 간의 파트너십도 추진될 전망이다.
요미우리가 보도한 성명 원안에는 “경제적 번영과 경제안보 강화, 지역 경제질서 유지 및 강화에는 미일 협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내용과 함께 지난해 발족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한 협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칩4’ 가운데 한국 대만보다 일본과의 협력이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과 일본이 차세대 반도체 공동 연구부터 반도체 기업 간 투자, 중국 반도체 산업 규제까지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현재 미일이 공동 연구 개발 중인 2nm(나노미터)급 제조 공정 등은 한국이나 대만을 따라오기에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제조 분야를 제외한 차세대 반도체 원천기술 및 소재 장비 분야 강국인 데다 애플 소니 같은 기업의 첨단 반도체 구매력 또한 풍부해 한국 대만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 일본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반도체를 특정 국가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며 “자국 반도체 산업 재건 목적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日, AI 반도체 ‘칩2’ 동맹… 中견제 앞세워 판 흔들기
양국, 차세대 반도체 개발협력 발표
1986년 협정뒤 美설계-日소부장 특화
당시 日반도체 산업 후퇴 원인 돼
지난해 12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일본을 깜짝 방문해 한 이 발언은 큰 화제를 모았다. 쿡 CEO가 찾은 구마모토현에서는 이미지센서 같은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하는 소니반도체솔루션과 대만 TSMC가 공장을 짓고 있다. 반도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라는 미 정치권 압박을 받는 그가 미일 반도체 협력을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같은 날 미 정보기술(IT) 기업 IBM도 일본 라피더스와 차세대 초미세 공정 반도체인 2nm(나노미터) 반도체 개발업무협약을 맺으며 “같은 가치를 가진 기업과 국가가 협력해 균형 잡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26일(현지 시간) 차세대 반도체 개발 협력을 밝힌 미일 상무장관 공동 성명은 최근 미일 기업 및 정부 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중국을 겨냥해 미일 양국이 ‘기술 안보’ 차원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 AI 시대 반도체 주도권 전쟁 격화
이는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될 미래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 중에서도 미국 일본 중심의 ‘칩2’가 쥐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반이 중국 영향 아래 있는 대만에 집중된 점과 중국이 AI 기술에서 앞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따라서 칩2, 즉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국과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에 특화된 일본이 함께 제조 역량을 강화해 중국 디리스킹(탈위험)을 이루겠다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일은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보다 상호 보완 성격이 크다. 더욱이 가장 가까운 안보 동맹인 만큼 최적의 파트너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中 리스크’에 다시 손잡는 미일
반도체 업계에선 미국 일본이 공동 연구에 나선다 해도 삼성전자나 TSMC 제조 공정기술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일 것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미세 공정 양산에 손놓고 있던 일본이 당장 2나노 양산에 성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일본이 반도체 제조에서 뒤처진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이다. 당시 세계 반도체 제조 점유율 50%를 넘은 일본 견제를 위해 미국은 일본 반도체 가격을 높이고 수출을 제한하는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그때 앞장선 미국 반도체협회 핵심 기업이 마이크론이다.
이후 미국은 전자산업이 발전하자 자신은 설계 및 구매, 후발주자 한국 대만은 제조, 일본은 소부장을 맡도록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했다. 그러다 이제 중국 위협이 닥치자 미일이 다시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것이다. 마이크론이 극자외선(EUV) 기반 차세대 반도체 양산을 위해 일본에 투자한 것도 이런 변화를 뜻한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양산 기술은 떨어져도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일본이 적극 동참하는 것이 한국 경제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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