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빼면 대중국 수출 이미 10년 전부터 줄고 있었다 [중국 리오프닝에도, 시름 깊은 한국 경제]
SPECIAL REPORT
중국 “제조 경쟁력 2035년 미국 추월”
반도체 착시는 반도체 수출액이 워낙 커 다른 분야의 수출액 감소가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제 국내 기업의 대중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던 2013년과 지난해 반도체를 뺀 대중 수출액은 각각 1242억 달러와 1037억 달러였다. 반도체 때문에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대중 수출액은 반도체를 빼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줄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중국의 리오프닝이 내수시장에 한정되면서 주변국에 비해 한국의 피해가 더 커진 모양새다.
반도체를 뺀 대중 수출액은 왜 감소하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중국의 제조업 급성장을 꼽는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천명, 이른바 ‘제조 굴기(倔起)’에 나섰다. 중국제조 2025는 제조업 경쟁력을 2025년까지 독일·일본 수준으로 향상하고, 2035년에는 미국을 제치겠다는 계획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중간재마저 자체 생산해 자국 완결적 가치사슬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중국의 제조업은 기술력이 떨어져 한국이나 일본 등 교역국에 큰 위협이 되진 않았다. 오종혁 대외정책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한국의 ‘소부장기업’ 육성정책과 비슷하게 강소기업 육성정책(1~5차)을 시행해왔는데, 강소기업 60%가 제조업체”라며 “중앙·지방 정부가 기술 개발 기업에 연구·개발(R&D) 보조금을 주거나 세액공제 혜택을 주면서 집중 육성해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국의 제조 굴기는 미국과의 패권전쟁,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승찬 중국경제연구소 소장은 “중국의 이러한 행보엔 국내 대순환(내수)을 핵심으로 국제 대순환(수출)을 성장시켜 미국 제재 등 대외 변수에 대한 대항력을 키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자국 내 공급망 확충인데, 그러려면 제조업 기반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중국 정부의 지원 속에 중국의 제조업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중국 제조업 부가가치는 15조 위안 증가해 2021년에는 31조4000억 위안을 달성했다. 이는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 중 30%에 이르는 수치다.
최근 공장을 내다 팔기로 한 A사도 중국 제조업체에 밀려났다. 이 회사 김진광(가명) 전무는 “2005~2010년 사이엔 한국이 중국보다 기술 우위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며 “하지만 중국 중소업체의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일감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이상길 광학기기산업협회 운영위원장은 “한때 국내 기업이 주도하던 스마트폰 렌즈 부품도 이미 중국의 크고 작은 제조업체에 주도권을 내줬다”며 “국내 대기업마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중국산 제품을 찾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완성재가 아닌 중간재마저 ‘메이드인 차이나’에 치이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는 못 만드는 제품 만들어야
최근에는 중국경제가 내수 중심으로 급격히 방향을 튼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3년 전 ‘쌍순환전략’을 꺼내들며 40년 만에 경제 엔진을 수출에서 내수로 틀었다. 지난 3월 양회에서도 수출을 통한 ‘양적 성장’이 아닌, 내수 중심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의 산업 구조는 한국·일본 등지에서 품질 좋은 중간재를 수입해 완성재를 만들어 수출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경제 방향성을 내수로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 수출액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수출 시장에서 반도체 비중이 커지면서 전체적으로는 수출액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중국인의 애국소비(궈차오)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우회수출 비중 감소 등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화장품 업계만 해도 궈차오 바람으로 설자리가 비좁아지고 있다. 중국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인 ‘퍼펙트 다이어리’를 보유한 이셴, ‘화시즈’를 보유한 저장이거는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성장률이 각각 52.5%, 78.2%를 기록한 반면 중국의 한국 화장품 수입 증가율은 2018년 64%에서 2020년 7.9%로 하락했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미·중 패권전쟁으로 대외관계가 악화하자 중국 업체들이 자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쓰겠다며 거래선을 끊어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의 제조 굴기나 쌍순환전략, 궈차오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중국 수출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대중수출 적자는 임계치를 지난 상황”이라며 “리오프닝 효과도 이전만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16일 장관 간 수출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수출 유망품목 30개를 선정해 집중지원하고, 중국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대중 수출기업에 대한 무역보험·신용보증 한도 확대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장은 2차전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기술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선임연구원은 “저위·중위 기술 품목은 아세안, 인도와 같은 제3국으로의 수출 다변화가 필요하고,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2차전지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기술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라도 전략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정부가 인센티브를 통해 국내로 생산시설을 옮겨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 연구원은 “그동안 여론의 관심이 2차전지나 반도체에 쏠려 있었는데, 이제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다른 나라는 만들지 못하는 것을 만드는 선진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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