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숲속도서관에 미래 혁신이 있더라
데이비드 색스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무렵, 파자마 바람에 맥주 한 캔을 들고 노트북을 펼쳤다. 1년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들과 단체 영상통화로 근황을 물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화면 아닌 진짜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지는 것만 같았다.
저자 데이비드 색스 역시 디지털 세상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에 더 많이 연결돼 있는데도 외로움과 소외감을 떨칠 수 없었다고 돌이킨다. 그는 이 책에서 코로나19 시기 우리 일상을 채운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탐구한다. 만능인 줄만 알았던 디지털의 한계를 회사·학교·쇼핑·문화생활·대화 등으로 나눠 200명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짚는다.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제니퍼 콜스태드가 이끌던 포드자동차 설계팀도 그랬다. 하지만 성과는 저조했다. 콜스태드는 결국 핵심 직원 8명을 디트로이트 사무실로 나오게 했다. 답이 없던 것 같던 프로젝트는 단 세 시간 만에 해결됐다. 회의실 벽에 온갖 아이디어를 붙인 뒤 사람들과 대면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덕분이었다.
저자는 교육에서의 디지털이 실패했다는 진단도 내놨다. 학교는 디지털 기기나 인터넷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더 써야 했고 어려운 아이들은 교육 기회에서조차 소외당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연스레 배워야 할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을 익히지 못했으며 정서적 성장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문화생활 역시 디지털화됐다. 저자는 이를 ‘4차 스트리밍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외에, 연주자의 땀 냄새나 음악이 꽝꽝 울릴 때 느껴지는 살갗의 떨림은 사라지고 공연은 네모난 화면으로 들어갔다.
디지털 혁신은 삶 전반을 편리하게 바꿔 놓았다. 하지만 저자는 디지털이 현실의 모든 공간과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뜻밖에도 서울의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에서 해답을 찾았다. ‘디지털=혁신’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작은 도서관을 세운 발상을 그는 ‘아날로그적 혁신’이라고 했다. 과거 향수에 젖는 개념이 아니라 정말로 살고 싶은 방식을 반영하는 인간 중심적 미래를 그린다는 점에서다. 우리가 바라는 디지털 시대의 미래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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