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문정왕후의 불교중흥정책
부처님오신날 맞아 봉은사 가볼 만
오늘은 음력 4월8일,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불교는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불교는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불교 중흥에 가장 힘을 기울인 인물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1517년 중종의 계비로 왕비가 된 문정왕후는 1545년 11월 아들 명종이 왕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명종은 12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기에 왕실 관례상 성인이 되는 20세까지 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다. 문정왕후는 수렴청정 기간은 물론이고, 사망할 때까지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권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에 문정왕후는 보우와 의논하여 현재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 왕릉을 성종 무덤이 있는 선릉(宣陵) 부근으로 전격적으로 옮겼다. 명분은 중종의 무덤은 아버지 성종 곁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사후에 자신이 남편인 중종 곁에 가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봉은사를 원찰(願刹)로 삼으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 옮긴 중종의 정릉(靖陵)은 지대가 낮아 침수 피해가 잦았다. 홍수 때는 재실(齋室)까지 물이 차기까지 해서 천릉까지 검토가 되었다. 결국 사후에 중종의 정릉 곁으로 가려던 문정왕후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565년 문정왕후 사망 후 무덤은 현재의 서울시 노원구 태릉(泰陵)에 조성되었다. 중종의 정릉과 영원히 명복을 빌어줄 봉은사 곁에 묻히려던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나마 아들 명종의 강릉(康陵)이 태릉 옆에 조성되어 사후에도 어머니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현재 서울 강남 최대 중심지에 자리를 잡은 봉은사. 이곳이 16세기 중반 문정왕후가 보우와 함께 불교중흥의 꽃을 피우려 했던 대표적 공간임을 기억하고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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