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 만 무엇…어쩌면 나도 당신도[책과 삶]
인생 연구
정지돈 지음
창비 | 272쪽 | 1만5000원
정지돈의 새 소설집 <인생 연구>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초현실적·비현실적 사람은 아니고,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비교적 평범한 작중 화자는 이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 맺고 상호작용한다.
친구의 여자친구였으나 친구와 헤어진 후 1년 정도 화자와 같은 집에 산 안젤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큰 기대를 받고 자랐으나 “컬트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일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침울함”을 풍기게 된 조 칩, 튀는 걸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나 졸업작품으로 터무니없이 과격한 시나리오를 써온 영화과 학생 진양 등이 그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파국에 이르거나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진 않지만, 적어도 화자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화자는 “나는 나도 되지 않았다. 서른한 살의 나는 스스로를 되다 만 무엇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화자에게 상대방들은 무언가 되려다 장엄하게 실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지구 반대편 파라과이까지 갔다가 강도, 홍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화자는 동정도 혐오도 없이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인생 연구’라는 책 제목은 그래서 적절하다.
마지막에 실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복도가 있는 회사’는 작가가 챗GPT 플러스와 함께 쓴 단편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의 소설창작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한다. 이 창작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문장, 생각하는 방향을 챗GPT에 맞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인생 연구>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은 “익숙하지 않은 어떤 종류의 만남을 요구”한다. 작가는 “매 순간 생성되는 낯선 세계 속에서 윤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는 일은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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