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발명’에서 ‘미래 돌파구’ 찾다

김수미 2023. 5. 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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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퇴치 DDT 환경 파괴
유연 휘발유 납 독성 인체 위험
전기 제공 핵분열도 무기 변화
잘못된 희망 주고 결국은 퇴출
“기아 퇴치·경제 불평등 해소 등
현대사회 가장 필요한 발명품”

인벤션/바츨라프 스밀/조남욱 옮김/처음북스/1만9000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불과 두 달 만에 미군 1만7375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당시 ‘말라리아모기는 적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보건포스터가 나올 정도로 말라리아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다. 그 때 이탈리아 정부가 시험적으로 다이클로로 다이페닐 트라이클로로 에테인(이하 DDP)을 사용했더니 말라리가 환자가 80%이상 줄었다. 이후 DDT는 농업 및 가정용 살충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DDT 합성에 성공한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는 ‘(말라리아로부터) 수 십만 명의 생명과 건강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했다. 미국 국립과학연구원 생명과학연구위원회는 “DDT는 인류가 큰 빚을 지고 있는 몇 안되는 화학물질”이라고 했다.
DDT 합성에 성공해 말라리아로부터 수 십만 생명을 구한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스위스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 출판사 제공
그러나 현재 DDT는 열대 국가에서 말라리아 퇴치용으로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전 세계적으로 사용 금지되며 사실상 퇴출됐다.

신간 ‘인벤션’(처음북스)은 DDT처럼 발명 초기 각광받으며 세계적으로 확산됐거나 큰 기대를 받았다가 실패한 발명들을 조명한다. 세계적인 에너지, 환경 분야 거장인 저자 바츨라프 스밀은 “과거의 실패와 교훈에서 배우려는 의지가 현대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실패한 발명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DDT는 모기와의 전투, 농작불 보호에 강력한 효과를 냈지만, 대규모 살포 과정에서 송골매, 개똥지빠귀 등의 새들까지 죽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해양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해 DDT 사용 금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출판사 제공
해양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DDT의 위험성을 조사해 현대 환경운동의 시초가 된 ‘침묵의 봄’을 출간했다. 이 책은 86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DDT 사용 금지 요구 여론이 확산하고 1972년 미국환경보호청에서 7개월간 DDT 청문회가 열렸다. 결국 DDT는 2004년 스톡홀름 협약을 통해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 사용만 허용됐다.

20세기 초반 등장한 유연 휘발유도 DDT의 전철을 밟았다.

자동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당시 내연기관의 노킹(knocking·조기 점화 현상)이 골칫거리였는데, 이를 해결할 첨가제로 비싼 에탄올 대신 테트라에틸납(이하 TEL)이 떠올랐다.

미국 공중보건 전문의들은 납의 독성이 신경조직에 심각한 손상을 남기며 태아와 유아에게 특히 유해하다며 휘발유에 첨가하는 것을 반대했다.

1924년 10월 TEL 가공공장 노동자 35명에게 급성 신경손상이 나타나고 그 중 5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상대적으로 적지만 장기적인 노출만으로도 납이 인체에 해로운 결과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결국 1975년 미국은 모든 자동차에 무연휘발유를 의무 적용하고, 1977년에는 휘발유에 납 첨가를 아예 금지했다.
바츨라프 스밀/조남욱 옮김/처음북스/1만9000원
핵분열은 ‘성공적인 실패’로 꼽힌다.

독일의 오토 한과 리세 마이트너가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지 7개월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종전 직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종전 후 군비 경쟁이 시작되고 원자로를 전력발전에 사용하는 움직임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해졌다. 핵분열 기술은 깨끗하고 저렴한 전기를 제공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각국은 이미 냉전의 도구가 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력 수요는 예상과 달리 감소했다. 발전소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고 기업들도 몰락했다. 원자력 기술 개발 당시 인류 전력의 대부분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21년 기준 전체 설비중 5%만 가동되고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10%만 담당하고 있다.

실패한 발명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간과 환경에게 위해한 영향을 미치거나, 비합리적인 집착으로 경제성이 간과됐다. 또 과장된 보고서와 지나치게 낙관적인 미디어의 보도는 잘못된 희망과 기대를 심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저자는 기존의 불평등을 크게 줄이거나, 건강, 교육, 소득 격차를 좁히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한다. 수억 명의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영양 결핍 문제 해결이 초음속 운송 수단 개발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발명과 혁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소 보수적이다. 기발한 발명품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기존 기술을 확장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기적적인 돌파구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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