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 이끈 6인 리더십 속에 숨은 ‘힘’은?

김용출 2023. 5. 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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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살아있는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
아데나워·드골·닉슨·리콴유·대처 등
국제질서 형성에 영향력 6인의 특징 해부
겸손·의지·초월·신념·평형의 전략 추구
위기마다 현실 직시·결단할 땐 대담하게
출신도 非상류층… 정치권의 인습에 도전

헨리 키신저 리더십/헨리 키신저/서종민 옮김/민음사/3만3000원

프랑스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에서 개인과 그 개인이 일으킨 사건은 광대한 바다에서 피할 수 없는 조류에 따라 일어난 ‘수면의 풍파’이자 ‘거품 산꼭대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 구조와 체계가 개인이나 리더에 본질적이고 압도적인 규정력을 가진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970년대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미국 외교정책을 이끌었던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상의 구조와 체계가 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탁월한 리더의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극복하고 오히려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전후 격동의 시기에 자신이 살았던 사회와 국제 질서 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리더 여섯 명의 세계 전략과 특징, 공통점과 시사점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전후 독일 총리를 지낸 콘라트 아데나워,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가 전후 국제질서 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리더 여섯 명의 세계 전략을 분석한 책을 펴냈다. 다만 리더를 배출했던 기반이나 환경이 최근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콘라트 아데나워, 샤를 드골, 리처드 닉슨, 안와르 사다트, 리콴유, 마거릿 대처.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들 리더 6인의 세계 전략 핵심과 주요 성취를 살펴보면, 먼저 콘라트 아데나워는 1949년부터 무려 14년간 서독 총리로 재직하면서 과거를 인정하는 ‘겸손의 전략’을 통해서 패전국 독일을 이끌고 대서양 동맹에 정박시키는 한편, 기독교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확신을 반영한 도덕 기반을 재건했다.
샤를 드골은 이른바 ‘의지의 전략’으로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재건에 앞장섰다. 1944년에는 조국 프랑스 해방에 앞장섰고, 1958년에는 내전을 막고 알제리을 떼어내는 한편 개헌을 이뤄냄으로써 프랑스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틈바구니 속에서 강대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헨리 키신저/서종민 옮김/민음사/3만3000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사임했던 리처드 닉슨은 세력균형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평형의 전략’을 구사하며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벗어나도록 했고, 중국과 대화를 시작했으며, 중동의 변화를 이끌 평화정착 절차를 시작했다.

안와르 사다트는 군사전력과 외교를 기민하게 결합해 이집트의 국가적 자신감을 회복하는 한편 이념을 뛰어넘는 ‘초월의 전략’을 통해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의 여정을 시작했다.

리콴유는 ‘우월의 전략’을 통해서 다민족 항구도시 싱가포르를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통일성을 갖춘 번영된 도시국가로 변모시켰다.

대처는 1979년 집권한 뒤 과감한 경제개혁을 펼치는 한편 ‘신념의 전략’을 바탕으로 대담함과 신중함을 절묘하게 조화시켜서 포클랜드전쟁과 홍콩반환 등에서 영국의 승리와 쇄신을 이끌어냈다.

“전쟁에서 진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데나워는 전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독일에 지운 여러 조건과 규제에 대해서 불평하고 볼멘소리를 내는 동료 의원들에게 이같이 단호하게 묻곤 했다. 패전국으로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선 독일이 처한 냉엄한 현실을 먼저 직시하라는 지적이다. 이들 여섯 인물의 능력주의 리더십 공통점과 교훈은 이들이 무엇보다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자주 촉구했다는 사실이라고 키신저는 분석했다.

이들은 아울러 상황을 꿰뚫어 보는 감각과 현명한 판단이 있었다. 닉슨과 사다트는 전임자로부터 고통스러운 전쟁을 물려받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창조적 외교관계를 시작하려 했다. 아데나워와 대처는 미국과 강력한 동맹 형성이 조국에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통찰한 반면, 드골과 리콴유는 상황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변화가 가능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연계를 선택했다.

이들은 결단이 필요한 시기엔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알았고, 심지어 대중과 불화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처는 지독한 경제위기와 많은 반대에도 포클랜드제도를 되찾기 위해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드골은 1960년 알제리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일부 반발에도 직접 전면에 나서서 위기를 극복했다.

키신저는 이들 리더들이 모두 상류층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데나워의 아버지는 군부사관이었다가 나중에 사무원으로 일했고, 드골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닉슨은 서던 캘리포니아 중하층 가정에서 자랐고, 대처는 식료품상 딸이었다. 사다트는 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심지어 이집트 사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낼 때 신원보증인을 찾느라 고생했다. 중국계 싱가포르 부모를 둔 리콴유는 장학금에 의존해 학업을 이어가는 처지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변변찮은 배경 때문에 오히려 기존 정치권의 인습적 범주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키신저는 분석한다.

하지만 여섯 리더를 배출하는데 도움이 됐던 기반이나 환경이 현재 붕괴에 직면했거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키신저는 우려했다.

먼저, 이들이 이른 나이에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게 해준 인본주의적 능력주의의 토대가 된 중등교육과 대학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등교육과 대학이 시민 형성의 본연의 임무에 실패하고 진영주의 및 파벌주의와 경쟁적 시민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쇄 문화가 영상 및 시각문화로 전환하고, 인터넷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한 것도 리더 부재를 촉진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글로벌 리더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키신저는 리더십은 오랜 평온이 부르는 사회적 권태 때문에 쇠퇴하지만, 결국 역경의 시대가 오면 다시 진정한 리더십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인용으로 답을 대신한다.

“사회가 평화로운 시간이라는 축복 속에서 천천히 규범의 부패에 빠진다면 국민은 ‘공동의 자기기만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라 판단되는 자 또는 공공선보다는 특별한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큰 사람들이 내세우는 자’를 따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일깨우는 ‘역경의 시대’가 찾아오면 그 충격으로 ‘자기기만이 드러나고, 필연적으로 국민은 평온한 시기에는 거의 잊혀 있던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된다.’”(540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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