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일군 경제개발 60년 [만물상]

강경희 논설위원 2023. 5.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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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60주년이 되는 지난해 조촐하게 행사가 열렸지만 한국의 성공 경험을 국제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전직 경제 관료들의 조언에 따라 61주년인 올해 큰 규모의 국제 회의를 개최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만 수립한 게 아니었다. 1950년대에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대유행이었다.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네팔·파키스탄 등이 3~5개년 개발 계획을 세웠다. 당시는 인도가 최고 우등생으로 인정받았다. 1차 5개년 계획으로 좋은 성과를 내더니 2차 목표를 더 높였다. 반면 미국에서 교육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스탈린 방식”이라며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첫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0년 11월 장면 내각에서 만들어 이듬해 1월 발표했다. 미국 원조 없이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시절이어서 5년간 경제개발에 4억2000만달러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 당국자들이 “쇼핑 리스트 같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1961년 5·16 군사정부가 집권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작성하라고 각 부처에 명령을 내렸다. 당시 상공부 오원철 화학과장이 갱지 10여 장에 사인펜으로 그린 차트를 들고 재정위원장을 맡은 장교 앞에서 화학공업 5개년 계획을 브리핑하고 승인받았다. 각 부처에서 ‘오원철 모범답안지’를 구하려고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계획을 총괄할 조직도 없어 혼란도 겪었다. 1961년 7월 22일 경제기획원이 신설돼 경제 사령탑이 됐다.

▶남북한이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체제 경쟁을 벌였다. 1961년 북한은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3년을 연장했다. 1970년에 6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자력갱생’ 노선을 택했다. 반면 한국은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개방 노선을 택했다. 그것이 남북한의 경제력을 바꿔놓았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35년간 총 7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정부가 청사진을 제시하고 민간 기업이 뛰는 성장 모델로 6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400배, 수출은 3900배 커졌다. 반도체·철강·자동차·조선·화학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우크라이나 교과서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어깨가 으쓱해질 만큼 세계가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전직 경제 부총리와 장관들은 한목소리로 “지난 60년은 성공했지만, 포퓰리즘을 근절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60년은 어렵다”고 경고한다. 과거 성공에 취해 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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