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한마디에 강제 해산, 훼손되는 집회의 자유
경찰이 지난 25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단체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개최하려던 야간문화제를 강제해산했다. 경찰은 참가자들의 팔다리를 잡아 끌어냈고, 견인차를 동원해 무대차량을 강제로 옮겼다. 경찰은 이를 막던 노동자 3명을 공무집행방해로 체포했다. 신고의무가 없는 야간문화제에 대해 불법집회로 번질 우려가 있다며 강제력을 발동한 것이다. 발생하지도 않은 상황을 예단해 평화적인 집회를 강제 해산한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과거 정부가 불법집회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며 집회 엄정대응을 주문한 지 이틀 만에 경찰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경찰이 일체가 돼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것에 우려와 불안을 금할 수 없다.
경찰은 “대법원 앞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이고 문화제와 노숙 농성이 불법집회로 변질될 수 있다”며 대법원 담장에 철제 펜스를 치며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그러나 야간문화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신고대상 집회가 아니다. 또 법원 앞 집회는 헌법재판소가 2018년 집회금지 조치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이후 가급적 허용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그럼에도 경찰은 법원 앞 집회를 금지토록 한 집시법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해 강제해산에 나선 것이다. 그간 노동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촉구하며 수년간 노숙농성을 해 왔지만, 경찰과 사전협의 등을 통해 마찰없이 진행해 왔다. 그럼에도 경찰이 평화로운 집회를 막은 것은 일부러 폭력 충돌을 유발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찰청은 25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집회·시위 강제 해산 및 행위자 검거에 방점을 둔 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6년 만에 실시하는 불법집회 강제해산 훈련이다. 경찰 문건에는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 “기동부대 역량 강화 측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추진할 것”이란 내용이 있다.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고라도 집회를 봉쇄하고 보겠다는 기세가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의 노숙집회를 빌미로 집회·시위를 아예 허가제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다음날 여당 원내대표가 “야간문화제를 빙자한 집회도 법 취지에 맞는지 적극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고, 결국 경찰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집회는 비폭력 기조를 유지했다. 이런 집회까지 막는 것은 국정 혼란과 민생 위기, 민주주의 퇴행에 항의하는 시민들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정부는 집회를 제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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