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신고한들 달라질까
아장아장 걷는 아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배냇짓 한 번에 와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제 막 지구별에 온 아이들은 초봄 연둣빛 새싹처럼 예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휴가 나온 군인들마저 귀엽고 밥이라도 사주고 싶다. 생판 모르는 아줌마 마음도 이런데 부모들은 얼마나 귀할까. 머리채 잡고 니킥을 날리고 싶은 재수 없는 중장년을 봐도, 한때 저렇게 어여뻤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금쪽같은 우리 아이'가 또 세상을 등졌다. 충남 천안 모 고등학교 3학년 김 모군이다. 유서에는 '신고한들 뭐가 달라질까'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모든 어른들의 죄다.
속수무책으로 소중한 아이들을 자꾸 잃는다.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세계 1위 저출산 국가 주제에 태어난 아이들조차 지키지 못한다. 친부모와 양부모 학대로 죽고,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러지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떠난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나.
학교폭력부터 근절할 대책을 찾아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데, 신고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에게 딸이 던진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학폭 가해자였으면 좋겠어, 피해자였으면 좋겠어?" 이 가혹한 선택 앞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내 자식이 가해자가 되는 걸 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우리 애만 미워하냐" "별것도 아닌 걸로 애 기죽이지 말라"고 따지기 전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고 죄를 지으면 몇 배 더 가혹하게 돌려받는다는 걸 가르치는 게 맞는다.
김군은 유서에 "온 세상이 죽으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고통받는 모든 아이들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온 세상이 소리치고 있다, 절대 죽지 말라고!" 부모에게 말하고 선생님에게 말하고, 그것도 안 되면 우연히 만난 어른에게라도 말하자. 신고하면 달라질 수 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니까.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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