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의의 쉼표] 소중한 것이 뿌옇게 가리지 않도록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3. 5. 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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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눈치채기 어려운 변화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갈 법한 사소한 변화들이죠. 지난 2년 동안 편의점 유리벽을 가리고 있던 반투명 시트지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한번 길을 나서면 편의점 5개는 쉽게 지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런 게 있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얇은 한 장의 시트지가 사람 목숨을 좌우했을 정도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단지 작은 변화로 치부하고 넘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30년 넘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던 편의점에 가림막이 붙은 것은 2021년 7월부터 편의점 담배광고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보건복지부 움직임에서 시작됐습니다. 2011년 만들어져 10년 동안 죽어가던 국민건강증진법 조항을 되살린 모양새가 됐죠. 세계적으로 담배 광고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 데다 2020년 한국 성인 흡연율이 20.6%로 10년 새 7.5%포인트 줄었기에 법의 강제성이 더해지면 금연 정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복지부는 담배와 편의점 업계가 자율적으로 규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입장입니다. 처음부터 그 해답이 시트지였던 것도 아니었죠. 광고의 위치를 조정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거나, 각도에 따라 실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필름을 광고에 붙이는 방안도 논의됐습니다. 불가피한 경우 광고를 제거하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광고를 통해 추가적으로 수입을 얻는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입장에서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죠. 규제 시행을 목전에 두고 가장 비용 부담이 작고 빨리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시트지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편의점 근무자들의 안전이었습니다. 24시간 직원 1~2명으로 운영되는 편의점 특성상 시트지로 내부 상황을 보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범죄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죠.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붙여야 할 정도로 시트지가 효용이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쏟아졌습니다.

결국 지난 2월 인천에서 편의점 가맹점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시트지의 효용성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통계자료는 그동안 편의점에 시트지를 붙이기 위한 노력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서 지난해 성인 흡연율(19.3%)과 중·고등학생의 담배제품 사용률(5.4%)은 모두 2021년 수치보다 0.2%포인트씩 늘었으니까요. 결국 시트지 대신 금연 광고를 붙이는 것으로 결론 나며 편의점 유리벽은 2년 만에 투명함을 되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비용과 자원의 낭비, 생명의 희생을 지고도 얻은 것이 너무나 적기 때문일 겁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정책을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강화하는 것을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고요. 하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보다 효과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비흡연자나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공공장소 실내 간접흡연 노출 정도는 지난해 49.7%로 전년 대비 약 10%포인트 증가했거든요. 금연구역 표지판 옆의 '노담' 캠페인 포스터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 가려져선 안되겠지요.

[박대의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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