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러닝머신에서 배운 삶의 법칙
새로운 단계 오를 수 있어
글쓰기·사랑·육아도 마찬가지
러닝머신을 달리다 보면, 숨이 가빠오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처음 러닝머신을 탈 때는 그 순간이 '멈춰야 되는 순간'이라 믿고 내려 한참을 헉헉거리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랬더니 가슴 통증이 아찔하게 왔고, 그 통증은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고, 바로 그 순간을 넘겨야 한다는 걸 안다. 숨이 가빠와서 그만두고 싶은 그 순간을 넘기면, 어느 순간 호흡이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그러면 나는 내 몸과 묘하게 분리되어서, 내 몸은 그저 달리고 숨쉬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고 나서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이상하게도 중간에 그만뒀을 때에 비해 거의 숨이 차지도 않고 호흡이 차분해져 있는 걸 느낀다. 그렇게 첫 코스 완주를 하고 난 뒤에는 매번 마지막까지 달리고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끝나고 고른 호흡으로 앉아서 쉬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무엇을 하든 우리는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을 견뎌야만 한다. 흔히 '시작이 반'이라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순간이 중간을 넘어갈 때 온다. 숨이 차 오를 때, 땀이 쏟아질 때, 그 순간을 참고 넘기면 숨이 고르게 이어지면서 달려나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개인적으로 나는 매일 글쓰는 일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 그렇게 쓴 글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기기도 하고, 모아서 책으로 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비결을 물어보곤 하는데, 나는 그저 습관이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글을 습관처럼 매일 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스무 살 무렵, 처음 블로그와 일기장에 글을 쓰고자 했던 때만 해도, 몇 줄 이상의 글을 쓰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를 갖고 있었고, 그 젊은 열망에 따라 어떻게든 무엇이든 글을 쓰고자 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이어온 지금에서는, 글쓰는 것이 고른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마 사랑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상대방과 너무 말이 안 통하거나, 심하게 다투었거나, 여러 이유와 조건 때문에 사랑하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때 너무 섣불리 포기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사랑을 견뎌볼 필요도 있다.
그렇게 다투고 화해하고, 오해를 풀고, 힘들게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둘도 없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관계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 번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과 그 정도 애는 써봐야 헤어져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흔히 직장 생활에서도 크게 3개월마다 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3개월 단위로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오다가,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지능은 탈출순'이라면서 좋지 않은 직장은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어느 직장이든 처음부터 좋을 수만은 없다는 아이러니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 빠르게 판단하고, 금방 손절하고, 곧장 그만두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인생을 대하는 법을 다시금 배운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진득하게 보는 드라마 시리즈 하나 갖기도 힘들다. 유튜브나 틱톡 등의 짧은 영상들이 범람하고, 인간관계도 필요와 취향에 따라 금방 달라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시점엔가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요즘 나는 결혼, 육아, 일, 운동, 글쓰기, 독서 등 모든 것이 꼭 그와 같다는 걸 느낀다. 이겨내고 나면, 삶이 펼쳐진다. 삶에서 어떤 언덕은 반드시 올라야만 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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