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관광과 개발 사이에 낀 강원도 삼척

2023. 5. 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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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도 동해안의 삼척을 답사했다. 이번 답사의 핵심 장소는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의 유채꽃 마을이었다. 마침 유채꽃이 마을 앞에 활짝 피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 유채꽃 마을의 원래 이름은 승공마을(勝共村)이다. 이 마을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북한이 대규모 군부대를 한국에 침투시켜서 게릴라전의 거점을 만들려 시도한 '삼척울진지구 무장공비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북한군에게 살해당한 일은 유명하다.

이때 이승복 어린이가 북한군에게 살해당한 것은, 그가 화전민(火田民)이었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에 소수의 가족이 고립적으로 살면서 숲을 태워 농사를 짓는 화전민들의 집은, 북한군이 한국 내에서 유격전을 벌이기에 적합한 거점으로 간주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산속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저지대에 모여 살게 하는 '독가촌(獨家村) 이주 정책'을 펼친다.

화전민들이 산에서 내려와 정착한 마을 가운데 특히 북한군의 침투 거점이 된 삼척 상맹방리에 만들어진 정착촌은 '공산주의에 승리한다'는 뜻의 '승공마을'이라 불렸다. 오늘날 승공마을은 유채꽃 축제와 맹방해수욕장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이들을 묵게 하는 민박촌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마을에는 승공슈퍼, 승공민박, 승공교처럼 이 마을이 만들어진 유래를 알 수 있는 도시 화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승공마을의 내륙으로는 유채꽃밭, 해안으로는 동해안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맹방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맹방해수욕장 북쪽의 절벽에 서면, 왼손 방향으로는 요즘 펜션·카페타운으로 뜨고 있는 오분해변과 삼척항이, 오른손 방향으로는 맹방해수욕장이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절벽에서 맹방해수욕장을 바라보면, 그 멋진 해수욕장의 한편에서 대규모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근 지역에 건설 중인 삼척블루파워라는 민자 화력발전소에서 사용될 항만시설을 짓는 것이다. 삼척시 북쪽 해안에는 이렇게 삼척블루파워가 있고, 남쪽 해안에는 삼척그린파워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삼척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삼척에서는 1990년대와 201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시도되었다가 대규모 저항 끝에 중단되었다. 이렇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두 번이나 막았더니 이번에는 화력발전소가 두 곳이나 건설된 것이다.

나는 원자력발전이 화력발전보다는 환경적 차원에서 차악(次惡)의 선택이고, 한국형 원전은 안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삼척이 차라리 원자력발전소를 받았더라면 환경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많은 화력발전소 건설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답사하는 내내 했다.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거주하는 시민들께는 상당한 금액의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원자력발전소를 막아냈더니 화력발전소가 들어와 버린 강원도 삼척 해안지역 주민들의 좌절. 고압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경상북도 밀양 농촌 지역 주민들의 반대 운동이 실패로 끝난 사례도 떠오른다. 모든 발전 시설을 거부한다는 이상주의적인 주장이 현실화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주민들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되기를 바란다.

이 글에서 소개한 맹방해수욕장을 비롯한 곳곳의 바닷가, 마이클 케나의 사진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원덕읍 호산리의 솔숲, 20세기 중기에 건설되다가 중단된 동해중부선 선로를 활용한 레일바이크, 해상케이블카 등 삼척은 관광지로서 성장할 장점을 많이 가진 지역이다. 가까운 미래에 동해선 철도가 완공되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삼척은 제주도와 비견되는 국제적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삼척의 민관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관광과 개발 사이에서 삼척의 미래 방향을 잘 잡아 나가면 좋겠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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