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에 몽둥이 ‘갑질’에도 과태료 5백만 원…이유는?

홍성희 입력 2023. 5. 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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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보라고 한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다고 체벌하는 등 전근대적인 가혹 행위가 한 중견기업에서 벌어졌다. 이 회사는 "사람이 힘"이라고 내세우는 대형 인력파견업체 '더케이텍'. 가해자는 회사 창업주이자, 등기이사였다.

관할 고용노동청은 괴롭힘을 인정하고 해당 창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금액은 5백만 원에 불과했다. 수년간 괴롭힘에 시달려 병원까지 다녀야 했던 피해 직원은 처분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괴롭힘 행위 중 '폭행'에 대해선 수사 절차를 개시하면 형사처벌을 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엔 사용자가 근로자를 폭행하지 못하며, 위반하면 징역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형사 절차는 개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부서가 괴롭힘만 조사하는 곳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이 회사에 대해 오늘부터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 자격증 시험 떨어졌다고 '엎드려뻗쳐'

취재진이 입수한 사진들을 보면, 남성 여러 명이 사무실 바닥에서 나란히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 회사에서 보라고 한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며, 집단 체벌을 한 것이다. 가혹 행위를 한 인물은 종업원 만여 명의 한 대형 인력파견업체, 더케이텍의 창업주이자 고문인 이 모 씨다.

폭언도 뒤따랐다. "너희들은 이 다음에 결혼해서 애들도 책임 못 질 XX들이야, 이 개XX들이" 취재진이 확보한 음성 파일에 담긴 내용이다.

파일엔 '폭행 정황'도 담겨 있다. '퍽, 퍽' 소리가 난 뒤, 고문은 "일어나봐. 이X 같은 XX야. 네까짓 게 무슨 이사야? 너 강등시킬 줄 알아, 나가!" 라고 소리친다. 피해 직원은 "고문 지시로 몽둥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고문의 차량을 운전했던 한 직원은 각종 심부름도 해야 했다. 고문 자택 앞에 놓인 쓰레기를 분리해서 수거했다. 고문 전용 화장실의 비데 관리, 병원 진료 예약, 약 사오기 등 사실상 '종'처럼 직원을 부렸다.


■ '예술제'한다며 직원 노래 연습 강요

고문은 사내 예술제를 한다며, 직원들에게 노래 연습도 강요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예술제 영상을 보면, 직원들이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코러스를 넣는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 고문이다. 1시간 넘게 부르더니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다.

직원들은 행사 한 달 전부터 노래 연습에 동원됐다. 지시는 수시로 내려왔다. 피해 직원은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이고 6시부터 밤 9시, 10시까지는 노래 연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문 지시를 거부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직원들은 말한다.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들면 '사유서'를 쓰게 했고, 하루아침에 인사 발령을 내거나 징계 절차 없이 급여를 깎았다. 고문은 형식상 직책일 뿐, 실제론 이 씨가 전권을 휘둘렀다는 게 직원들 얘기다. 서울고용노동청도 이 씨가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 과태료 5백만 원…"위반 횟수만 고려"

지난 1월 진정을 접수한 서울고용청은 지난 3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 고문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서울고용청이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괴롭힘으로 인정된 행위는 모두 8가지에 달한다. 업무시간 외 연락, 사적 심부름, 노래연습 지시 등 과도한 업무지시, 협박, 폭언, 폭행, 차별, 가혹 행위 등이다. 진정 사실 대부분이 인정된 건데 금액은 5백만 원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해 '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과태료 상한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 부과된 이유는 뭘까?

서울고용청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과태료 부과기준에 따라 처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준은 아래와 같다. 고문은 ①번인 행위의 1차 위반에 해당돼 5백만 원이란 설명이다.

① 사용자가 1명에게 수차례 직장 내 괴롭힘을 하거나 2명 이상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경우
: 1차 위반 500만 원, 2차 1000만 원, 3차 1000만 원
② 그 밖의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 1차 위반 300만 원, 2차 1000만 원, 3차 1000만 원

이 기준대로면, 단순히 '위반 횟수'에 의해 과태료가 결정된다. 괴롭힘의 종류나 횟수, 기간, 피해 정도에 따라 세분화된 기준이 없는 것이다. 괴롭힘이 2번인 경우와 수년간 상습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똑같이 취급된다.

과태료 '상한'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배진교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괴롭힘이 여전한 데는 처벌 수위가 낮은 것도 한 원인"이라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용청 관계자는 "이번 사안의 경우 과태료가 적어보일 수 있다"면서도 "회사 규모에 따라 큰 금액일 수도 있어서 일률적으로 많다, 적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 수사도 가능한데…"별도 진정내야"

괴롭힘 중 '폭행'에 대해선 근로감독관이 적극적으로 수사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근로기준법 8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폭행해선 안 되며,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적용해 고문을 입건해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도 폭행이 괴롭힘으로 신고됐더라도, 근로감독관이 판단해 형사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고용청 측은 진정인이 별도로 진정을 내야 한다고 답했다. 괴롭힘 진정을 접수한 부서는 괴롭힘만 조사하는 부서라는 것이다. '같은 내용에 대해 다시 진정해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엔 "부서가 분리돼 있다"고 했다. 정송도 노무사는 "조사 중 인지한 범죄혐의는 별도로 수사해야 하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신고 내용에 대한 조사에만 그칠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서울고용청이 오늘부터 더케이텍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 고문 "머리 숙여 사과, 이사 사임하겠다"

고문은 오늘 취재진에게 보낸 '사과문'을 통해 " 저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과 피해를 입은 임직원에게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내 등기이사에서 사임함과 동시에 회사의 고문 역할에서도 물러나겠다"고도 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해당 고문이 31일 이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관 기사]
[단독] 폭언에 몽둥이까지…대형 인력업체 창업주의 괴롭힘 [창업주 갑질]①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4659
[단독] 행사한다고 “노래 연습해라”…갑질 인정돼도 과태료 5백만 원 [창업주 갑질]②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4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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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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