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비상구 강제 개방’ 승무원들 제지 못한 까닭은

정유미·심윤지·이재덕 기자 입력 2023. 5. 26. 16:39 수정 2023. 5. 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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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당시 안전벨트 매고 있어 즉각 대응 어려워
곧바로 제압 못하고 안내방송 안나온 점은 과실
고통 호소 승객들 1차 진료비는 아시아나 부담
추가적인 보상은 사건 원인 규명되는대로 결정
26일 오후 대구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한 아시아나 비행기의 비상구가 개방돼 파손된 모습.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비행 중 승객의 여객기 비상구 개방 행위를 제지하지 못한 이유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승객이 순식간에 범행을 저질러 문을 여는 것을 제지할 여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에 따라 승무원들의 미온적 대응이 사고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이날 사고 발생 시점은 착륙 2~3분 전으로 승무원들 역시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승객의 돌출 행동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비상구는 위급 상황 시 신속한 승객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덮개를 열고 레버만 당기면 바로 열리게 돼 있다. 고공비행 중에는 기압 차 때문에 비상구가 쉽게 열리지 않지만 활주로와 가까운 상공 200m 부근에서는 성인 남성의 힘으로 마음만 먹으면 문을 열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승객은 물론 승무원도 착륙 시에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게 돼 있다”면서 “갑자기 비상구가 열려 혼돈에 빠진 승객들이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승무원들은 모두가 제자리를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승무원들이 범행을 저지른 승객을 상대로 즉각적인 제압에 나서진 못한 배경에 의문을 품는 의견도 있다. 또 착륙할 때까지 안내방송이 없었다는 증언도 있어 부실한 사후 대처가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일단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항공사 매뉴얼상 승무원들의 과실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승무원들의 과실 여부에 대해 “일단 그런 부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로부터 항공보안법 위반 행위에 대한 진술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 승인을 받아 운영되는 항공사의 비상구 좌석 탑승 규정으로는 이번과 유사한 사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만 15세 미만, 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승객, 양팔이나 양다리의 민첩성이 충분치 않은 승객, 비상시 승객을 도와 탈출할 의사가 없는 승객 등의 탑승만 제한하고 있다.

항공기 사고가 나면 승객들이 곧바로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비상구를 사람이 열 수 없게 막아둘 수는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고 아이들이 창문을 못 열게 강제로 막을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상구 좌석에 승객들이 앉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종 사건 방지를 위해서는 아예 근처에 접근할 수 없게 조치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고로 고통을 호소하는 승객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아직 절차가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병원으로 옮겨진 승객들의 1차 치료비를 부담할 방침이다. 착륙 후 호흡곤란을 호소한 승객 12명 가운데 9명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3명은 보호자에게 인계했다. 다만 사고 원인 규명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추가 보상 여부와 규모는 경찰과 국토부 등 관련 기관의 발표를 지켜본 뒤 단행할 예정이다.

법률사무소 ‘원탑’의 권재성 변호사는 “항공사 직원 실수로 문이 열렸다면 항공사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주의 의무를 고지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면 항공사 책임이 없어 보인다”며 “승객들은 비상구를 연 승객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피해를 회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사고 원인을 승객 과실로 판단하면서도 기체 결함 여부 등도 살펴보고 있다. 사고가 난 항공기(A321)는 일단 운항을 멈춘 뒤 정밀 점검에 들어갔다. 다른 항공편은 모두 정상 운항 중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이날 대구공항에 계류 중인 해당 항공기의 비상구 열림 사고 현장을 직접 점검했다. 이어 항공사, 부산지방항공청, 한국공항공사 등이 참여하는 안전회의에서 철저한 원인 조사와 비상구에 대한 관리 강화 등 사고 재발방지를 지시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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