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1로 싸운 '美연준 반란군' "돈풀기는 악마와의 거래였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5. 26. 1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준에 맞서지 마라'는 투자자들의 제1원칙이다. 세계의 경제대통령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에 가슴 졸이기를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연준은 특별하고 비밀스럽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달러 통화량 조정 권한은 전적으로 연준이 갖고 있으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비공개로 논의한다. 돈에 대한 의사결정 주위로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미국 연준이 세계 어느 나라 중앙은행과도 다른 점은 반은 민간 은행이고, 반은 정부 기관이라는 점이다. 연준은 하나의 은행이 아니라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이며 전체적으로는 워싱턴의 지위를 받는다.

'코크랜드' 등의 저서를 쓴 경제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레너드의 이 책은 1913년 설립된 이후 110년간 세계를 쥐고 흔든 연준의 내부를 파헤친 탐사 논픽션이다. 저자는 10여 년마다 반복되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이후의 혼란들조차 모두 연준의 양적완화(QE) 때문임을 고발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 앨런 그린스펀이나 벤 버냉키가 아닌 토머스 호니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캔자스시티 연은 행장이었던 호니그는 2010년 11월 3일, FOMC에서 12명의 연준 위원 중 유일하게 사상 처음으로 제로금리 이하의 시대를 실험하는 QE에 반대표를 던졌다.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껐지만 당시 실업률이 9.6%에 달해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연준은 QE라는 극약처방을 고안했다. 호니그는 끔찍하게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열 살이 되기 전부터 가족의 배관 사업을 도왔고 베트남전 때는 포병으로 복무했다. 첫 직장은 캔자스시티 연은 감독국 경제분석가. 그런 그가 유일한 반란자가 된 것이다.

2008년과 2010년의 양적완화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2010년 연준은 이례적으로 10년 만기 미국채 같은 장기채를 6000억달러나 사들였다. 이로 인해 시장의 장기채가 마르면 찍어낸 돈은 위험자산으로 향하고 은행들은 대출을 해줄 수밖에 없다. QE는 은신처를 줄인 다음 도박판의 판을 키우는 결정이었다.

호니그는 위기가 지나가고 난 시점에 연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호니그는 경제시스템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FOMC가 월가를 승자로 점지하고 양극화를 부추길 것을 우려했다. 게다가 거대한 화폐의 파도는 월가의 탐욕을 부추겨 2008년 같은 금융 버블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호니그는 QE를 '악마와의 거래'라고 비난하며 몇 달간 FOMC 내부 회의에서 반대론을 폈다. 11대1의 소수 의견을 낸 직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했다. "내가 던지는 반대표가 연준 내에서도 이런 돈 풀기 정책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펴냄, 2만5000원

돌아보면 호니그의 우려는 모두 적중했다. 어떤 정책도 부자와 빈자의 격차를 양적완화보다 더 크게 벌리진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시기를 가히 미국 경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버냉키는 회고록에서 호니그를 충성심이 없고 고집 센 사람으로, 언론은 '울트라 매파' '괴짜'로 묘사했지만 그가 실제로 우려한 건 인플레이션이 아니었다. QE가 '배분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는 경고였다.

사실 화폐는 정치 담론에서 언제나 맹렬한 논쟁 거리였다. 연준이 존재하지 않던 금본위제 시기인 1896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역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 "금으로 된 십자가에 인류를 못 박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연준을 인플레이션이라는 노심 용융(Melt down)을 막기 위한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에 비유하지만 역대 의장들의 역할은 제각기 달랐다. 위대한 의장이었지만 인기가 없었던 폴 볼커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야인으로 살았다. 그린스펀의 현학적인 연준어(語) 사용은 이들을 천재들의 집단이란 편견을 강화해 대중에게서 유리시켰다.

2012년 연준 이사가 된 제롬 파월을 이 책은 '매도 비둘기도 아닌' 성향이며,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한다. 파월은 처음에는 호니그와 꽤 가까운 입장이었다.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서 일할 때 부품회사 렉스노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고 엄청난 이익을 챙기며 매각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토록 냉정했던 파월은 자산버블 위험을 알면서도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다. 비판 어조가 완화된 뒤 그는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파월은 의장이 된 뒤 확고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2018년 위험자산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갔을 때 더 많은 돈을 풀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금리 인상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던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저자는 QE로 땜질 처방을 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또 다른 연준이 제2 호니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긴 붕괴'가 언제든 경제를 침식시킬 수 있음을 이 책은 경고한다. 2022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올해의 책.

[김슬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