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만난 K팝 유쾌한 시도 vs 불쾌한 흉내

2023. 5.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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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가수 이현 참여 '미드낫 프로젝트'
AI로 6개 언어 발매·여가수 목소리 구현
SM 가상인간 '나이비스' 12명 음성 분석
에스파 신곡에 피처링…곧 신인가수 데뷔
브루노마스가 뉴진스 곡 부른줄 알았는데 AI
신선하다 호평속 대중 거부감·저작권 숙제
에스파 신곡 '웰컴 투 마이 월드'에 참여한 가상인간 나이비스(위)와 미드낫 신곡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SM엔터테인먼트·빅히트뮤직

"스페인어로 K팝을 들을 수 있다니 놀랍다." "베트남어로 된 뮤직비디오(MV)라니 잘못 본 줄 알았다."

지난 15일 공개된 하이브의 새 아티스트, 미드낫(MIDNATT)의 곡 '마스커레이드' 공식 MV엔 이런 외국어 댓글이 총 4000여 개 달려 있다. 하나의 곡이 한국어·영어뿐 아니라 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베트남어 등 총 6개 언어로 발매된 덕분이다. 유튜브 설정을 통해 언어를 바꿔가며 감상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의 목소리로 유창한 외국어 음악이 흘러나온다. 감미로운 남성 보컬과 여성 보컬이 뒤섞인 듀엣곡이다.

미드낫의 정체는 빅히트뮤직 소속 17년 차 발라드 가수 이현. 요즘 유행하는 '부캐'처럼, 새로운 음악을 추구해가겠다는 의지를 품은 그의 또 다른 자아다. 프로듀서 히치하이커가 작업한 신스웨이브 장르의 곡을 발표했으니 장르적 변신은 분명한데, 6개 언어를 습득하고 여자 목소리까지 낸 것은 분명 이현 혼자만의 힘은 아니다.

새로운 시도엔 하이브 자회사인 인공지능(AI) 음성기술 회사 수퍼톤의 '다국어 발음 교정 기술'과 '보이스 디자인 기술'이 적용됐다. 이현이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AI가 발음을 다듬었다. 또 이현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여성 목소리를 제작했다. 정우용 하이브IM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곡에 어울리는 최적의 여성 보컬을 구현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드낫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건 K팝 확장의 길을 아티스트·팬덤 산업뿐 아니라 기술에서 찾는 새로운 시도여서다. 앞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세계 음반 시장에서 K팝의 매출 점유율이 2%에 불과한 현실을 언급하며 'K팝 위기론'을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는 "음원에 사용된 6개 언어가 전 세계 인구 80억명 중 거의 절반을 커버한다"며 "이 기술을 통해 K팝 아티스트가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활약하는 데 언어적 제약을 덜어주고, K팝이란 장르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을 한층 확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이런 기술적 시도에 대해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티브라는 음악 산업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기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음악 산업이 직면한 '사업 확장'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하이브뿐 아니라 전통의 K팝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도 기술 구현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가상인간 아티스트 나이비스(nævis)가 그룹 에스파의 신곡 '웰컴 투 마이 월드'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앞서 12명의 성우 음성을 분석해 새롭게 음색을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번 곡의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가창을 맡으며 처음 목소리를 공개한 것이다. 나이비스는 4명의 멤버와 각각의 아바타 '아이'가 디지털 가상세계의 빌런 블랙맘바를 무찌른다는 세계관 설정 속 조력자 캐릭터다.

SM은 현재 아티스트별로 5개 제작센터로 나눈 데 더해 가상인간 지식재산권(IP)을 개발하는 별도의 제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인 기술 구현 방식과 데뷔 계획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SM 관계자는 "연초에 발표한 'SM 3.0' 계획대로 나이비스의 데뷔 준비도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엔터업계에선 AI의 기술적 구현도와 함께 대중의 정서를 중요한 척도로 보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인간을 닮은 로봇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이 대표적인 예다. 만약 방탄소년단(BTS) 같은 메가 IP를 활용할 경우 아티스트 당사자 동의하에 목소리 활용이 이뤄지더라도 팬덤의 반감이나 오용될 우려 등이 단박에 떠오른다. 또 당장 목소리를 활용한 콘텐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존재 이유부터 흔들리는 이해 충돌의 소지가 있다.

최근 유튜브·틱톡·스포티파이 등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AI 커버'를 보더라도 아직 리스크는 상존한다. AI 커버는 기존 음원 보컬을 변환한 일종의 합성 음성을 말한다.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K팝 그룹 뉴진스의 히트곡 '하입보이',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 등을 부르는가 하면, 프레디 머큐리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부르는 식이다. 수익화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유·무료로 보컬 음성을 변환시켜주는 서비스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유명인의 움직이는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유행했듯, 최근엔 AI로 음성을 바꾼 음악이 유행하고 있다"며 "대부분 목소리만 입힌 조악한 수준이지만 '신선하다' '재미있다'는 반응과 '이제 가수도 AI에 대체되는 것이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과도기적"이라고 짚었다.

음원 저작권, 목소리 퍼블리시티권 등 많은 권리 문제도 엉켜 있다. 지난달엔 '고스트라이터'라는 익명의 제작자가 AI로 가수 드레이크·더 위켄드의 목소리를 구현해 신곡을 발표하고 음원 유통까지 시키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의 문제 제기로 음악 사용과 유통이 차단되면서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 논란과 법·제도 정비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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