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설원의 전설, 몽골 올레에 가다

고상선 제주시 서광로 2023. 5. 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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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호수 위에서 개썰매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즐겨본다.

Day 1

2코스-11km, 말 타고 올레길로

가는 겨울이 아쉬워 몽골로 떠난다. 이른 새벽부터 공항 발권 창구에 줄을 서서 수하물을 부친다. 비행기가 출발한다. 아침 시간이 훨씬 지나 기내식을 먹는다. 영화 한 편을 보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한다.

입국신고서를 제출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제주올레 몽골지사 '뭉그너'씨와 코이카KOICA 봉사단원으로 일하는 김현정씨가 반갑게 우리를 마중한다.

버스는 도중에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점심 장소에 우리를 내려준다. 김치찌개로 배를 채운 우리는 몽골올레 2코스에 도착한다. 출발지에서 말들을 기다린다.

출발지에서 바라본 올레길의 첫 풍경은 실망 그 자체였다. 야생화 천국이었던 아름다운 여름 산의 풍경은 없다. 노랗게 변해 버린 풀과 황량한 맨땅만 있을 뿐이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눈 덮인 설원을 잔뜩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

우리를 태운 말들은 찬바람을 뚫고 뚜벅뚜벅 올레길을 걸어간다. 보통은 기수 1명에 올레꾼 2명이 한 조가 되어 말을 타는데, 나는 혼자서 기수 없는 말을 타고 올레길을 간다. 작년에 말을 타본 적이 있어서인지 조금은 편안하다. 말과 하나가 되어 대설원을 가로지른다. 1시간을 달린 말은 중간에 우리를 내리고 돌아간다.

기온은 영하 7℃. 정비를 마친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지난여름 야생화로 가득 채워졌던 초원은 벌거숭이산으로 변해 있다. 황량한 풍경이다. 능선 오른쪽으로 이어진 산 정상을 지나서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인 '어워'(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서낭당)를 지나간다. 종점까지는 내리막이다. 웅장하고 기괴한 바위산과 눈 덮인 언덕 아랫부분이 훤히 보인다. 넘어질까 봐 조심해서 걷는다. 어느덧 몽골 올레 2코스 종점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게르에 도착한다. 저녁을 먹고 불을 지핀다. 모닥불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보름달이 뜬 탓인지 별이 훤히 보이진 않는다.

Day 2

3코스-17km, 개썰매 체험하기

잠에서 깬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온도계는 영하 16℃를 가리킨다. 제주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온도다. 추워도 너무 춥다. 게르 뷔페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개썰매를 체험하러 간다. 추운 날씨에 썰매라니! 단단히 채비하고 버스에 오른다. 꽁꽁 언 톨강 썰매장에 도착해 차례차례 썰매를 탄다. 재미는 있지만 손발이 얼 것 같았다. 모두 추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3코스 중간 지점에 도착해 역으로 걷기 시작한다.

해가 어느 정도 올라왔음에도 기온은 영하 12℃를 가리킨다. 바람도 많이 불어 상상 못 하는 추위다. 온도가 낮은 탓에 스마트폰은 꺼져버린다. 사진은 몇 장밖에 찍지 못했다. 두꺼운 털장갑을 꼈지만, 손가락 끝은 감각이 없다. 발가락도 얼어 걷는 게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눈 쌓인 숲을 지난다. 눈이 녹아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능선을 걷다 보니 어느덧 3코스 시작점인 테를지 안내소에 도착한다. 게르에 도착한 우리들은 몽골 전통 음식인 허르헉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후에는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숙소인 게르 공연장에서 전통 공연을 감상한다. 사장님이 들려주는 몽골의 역사 이야기도 함께 듣는다.

기대했던 눈은 생각보다 적었다. 사진과 같이 황량한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Day 3

1코스-14km, 1일 유목민 체험하기

오늘 아침도 춥다. 온도계는 영하 12℃를 가리킨다. 게르에서 나와 1코스 출발지인 헝허르마을로 이동한다. 북드항산 초입에서

1코스가 시작된다. 이곳은 집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냥이나 벌목 등을 제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4개 정도의 낙타등 능선이 이어진다. 후반부에는 내리막과 황량한 평지를 따라 걷는다. 헝허르 안내소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과 인증 스탬프를 찍는다. 이곳은 눈이 녹지 않아 멋진 설원이 펼쳐져 있다. 잘 보존된 자연과 설원을 보며 가파른 언덕을 걷는다.

조금 걸으니 마을 주민이 허락한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한다. 오늘 점심은 도시락이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나눠준다. 그에게서 받은 말고기와 만두를 먹는데 맛이 참 괜찮다. 배를 채웠으니 다시 출발이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왼편으로는 눈 쌓인 침엽수림이, 오른편으로는 시베리아횡단 열차가 지나간다. 눈을 배경으로 하니 괜히 더 웅장해 보인다. 게르 캠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어워를 지나 눈 쌓인 작은 숲길을 빠져나오면 한없이 넓은 내리막 풍경이 펼쳐진다. 눈 덮인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는다. 설원의 눈을 헤치면서 정신없이 걷다 보니 1코스 도착지인 톨주를랙에 도착한다.

이제 남은 건 관광이다. 버스를 타고 몽골의 중심지가 보이는 자이승전망대로 향한다.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몽골 올레 완주증을 들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국영백화점에서 아이들 선물과 보드카를 구매한다. 숙소 사우나에서 그간 쌓였던 여독을 푼다. 이번 몽골 올레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눈 덮인 2월의 한라산보다 못해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도민은 상상할 수 없는 영하 12℃의 강추위를 느껴봤다는 것만으로 만족이다. 군데군데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의 풍경은 아쉬움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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