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증명’ 해야 생리용품 지원한 탓?…10명 중 3명 사각지대

오세진 2023. 5. 26. 15: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원 대상 24만3천명 중 17만3천여명만 혜택
소득 기준 대상 한정…신청해야 받도록 한 영향
오는 28일 ‘세계 월경의 날’을 맞아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생리대 안전관리 기준 강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일회용 생리대 가격 모니터링 결과를 공개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정부가 지난해부터 여성 청소년에 대한 생리용품 지원을 의무화했지만, 지원 대상은 고작 전체 여성 청소년의 6%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직접 신청’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탓에, 10명 중 3명은 지원 기준에 해당하고도 실제 생리용품을 지원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월경의 날’(5월28일)을 맞아, 여성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생리용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26일 <한겨레>에 ‘여성 청소년 생리대 바우처 지원사업’ 대상자 수가 23만7818명(올해 1월 사회복지통합관리망 ‘행복이음’ 기준)이라고 밝혔다. 전국 9∼24살 여성 청소년 390만3733명(2021년 인구총조사 기준)의 6.1%에 불과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시행된 ‘청소년복지지원법’이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을 의무화했지만, 대상을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 한부모가족 등으로 여전히 제한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사업을 시작한 건, 2016년 생리대를 살 돈이 없는 일부 학생이 신발 깔창을 생리대 대신 쓴다고 해서 논란이 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2018년 국고보조사업으로 생리용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가, 지난해부터는 이를 의무화하도록 변경했다. 또 지원 대상도 기존의 11~18살에서 9~24살로 확대한 바 있다.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여성 청소년들은 온·오프라인 신청을 통해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아 생리용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다. 올해 지원금은 월 1만3천원이다.

지원 대상이 한정돼 있지만, 지원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실제 생리용품을 지원받은 여성 청소년의 비율은 훨씬 더 적었다. 2018년 지원 대상 14만7천여명 중 실제 지원을 받은 비율은 약 70%(10만4천여명)에 불과했다. 2021년엔 약 90%(12만4천여명 중 11만2천여명)가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4월 지원 대상 연령이 확대됐지만, 지원 비율은 71%(지원 대상 24만3천명 중 17만3천여명)에 그쳤다.

여가부는 “2021년보다 지원자 수가 6만명 정도 늘었지만, 지난해 지원 대상 연령이 확대되면서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증명해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신청률을 낮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소득 수준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성 청소년에게 낙인을 남길 수 있다”며 “온라인 신청도 가능하지만 디지털 기기 정보 접근성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랄지, 주민센터 이용이 어려운 가정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안 활동가는 “비싼 생리대 문제는 비단 취약계층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성 청소년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라며, 월경권 보장 차원에서 보편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25일 자체 모니터링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국내 생리대 가격은 국외보다 평균 39.05% 더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서울을 비롯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때문에 별도 예산을 편성해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전국 17개 시·도 지역 가운데 대전·울산·세종·경남·제주 등은 예산 여력이 부족해 자체 지원 사업이 없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지난해 ‘현행 국고보조사업의 형식을 유지하는 대신, 자격 기준을 없애 여성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생리용품을 지원받는 쪽으로 개선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여가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소득 기준 방식을 유지하되) 지원 대상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가와 지자체가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장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월경권 보장은 세계적 추세”라며 “모든 여성 청소년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할 권리를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의원실 쪽에선, 여성 청소년에 대한 보편적 생리용품 지원에 한해 평균 5096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