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착한 집주인 대출길 열어야 세입자도 산다

김민정 기자 2023. 5. 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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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멀쩡한 임대인도 파산하는 상황을 만들어놨어요.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대출을 권하고, 보증금을 반환하고 싶은 임대인에겐 대출을 막으니 속이 터집니다."

임대인들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집중하는 동안 임대인에 대한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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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멀쩡한 임대인도 파산하는 상황을 만들어놨어요.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대출을 권하고, 보증금을 반환하고 싶은 임대인에겐 대출을 막으니 속이 터집니다.”

최근 만난 다주택 임대사업자 A씨의 말이다. A씨는 “역전세와 전세사기로 새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운데,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공시가격이 하락한 만큼의 차액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해 부담이 상당하다”고 푸념했다. 임차인에게 임차권등기명령이나 민사소송을 당하면 ‘나쁜 집주인’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차라리 매도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임대인들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무작정 대출을 더 많이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이달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지면서 임대인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도 규제 완화 목소리를 높이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집중하는 동안 임대인에 대한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역전세나 깡통전세 문제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못 돌려줘 발생하는 문제다. 임대인이 보증금으로 인해 파산하면 임차인도 함께 불벼락을 맞게 되는 만큼 임대인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시적으로라도 대출 규제를 터주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전세사기 피해가 최고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역전세가 지속하면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난무할 것이란 예측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연립주택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은 전달보다 0.2%P(포인트) 하락한 69.8%로 집계됐다. 연립주택 전세가율이 70%대가 무너진 것은 지난 2017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장치들은 마련해야 한다. 다음 세입자에게 돈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주려던 일반적인 집주인마저 당장 내줄 돈이 없어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 대출과 관련한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에 따라 일부 보증금을 선순위권자보다 먼저 반환받을 수 없는 피해자에게는 무이자 대출이 지원된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특별법이 ‘대출 권장법’이라고 반발한다. 피해자들에게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지원방안은 이미 큰 빚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빚에 빚을 더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전세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작정하고 전세사기를 벌인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선량한 임대인까지 함께 구렁텅이에 넣어선 안 된다. 전세 계약 구조상 임대인이 무너지면 임차인도 함께 쓰러지게 돼 있다. 전세시장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걸 관망할 때가 아닌,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되찾도록 정부가 팔을 걷어붙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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