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풍‧이항범 “여러모로 어빙은 아쉬운 선수입니다”
시대별로 트랜드가 바뀌는 추세 속에서도 호불호가 갈리지않고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 타입이 있다. 플레이 스타일상 화려함, 다이나믹, 쇼타임 등을 언급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다름아닌 드리블 마스터다. 농구선수치고 드리블 못치는 선수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드리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른바 장인급 드리블러들은 매니아층이 두텁고 농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가장 먼저 어필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드리블 스킬을 리그에서 독보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이른바 마스터급으로 평가받게되면 같은 선수들마저 팬으로 만들기 일쑤다. 드리블은 기본기중의 기본기인지라 어지간히 잘해서는 눈에 띄지않는다. 겉으로봐서도 정말 감탄사가 터져나올만큼 임팩트와 꾸준함이 동반되어야지만 이목을 끄는게 가능해진다.
1980년대 이후 기준으로 팬들 사이에서 명성높은 드리블러를 꼽으라면 디트로이트 배드보이즈의 수장 아이재이아 토마스(62‧185cm), 킬러 크로스 오버 마스터 팀 하더웨이(57‧183cm), 단신 득점머신의 대명사 앨런 아이버슨(48‧183cm), 퓨어 포인트가드와 듀얼가드 양쪽에서 최상급 기량을 자랑한 크리스 폴(38‧183cm), 기행과 악동짓이 커리어를 틀어막고있는 카이리 어빙(31‧187.2cm) 등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단신이라는 공통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드리블 스킬은 슈팅 능력과 더불어 키 작은 선수들이 가져갈 수 있는 가장 경쟁력있는 무기다. 자의든 타의든 가드포지션을 맡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되면 볼을 지키고 운반하는 능력은 필수중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능력치가 좋아도 단신 선수가 볼 핸들링이 미숙하면 장신들의 리그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1980년대말 리그를 주름잡던 배드보이즈 멤버들은 거칠고 투박한 면이 강했다. 여기에 섬세한 안정감을 심어준 선수가 리더 토마스였다. 토마스는 사이즈는 크지않지만 스피드, 운동능력이 좋았고 거기에 더해 모두가 인정하는 드리블 스킬까지 갖추고 있었다. 항상 공을 낮게 드리블하며 동료들을 진두지휘했는데 자신은 상대의 공을 수없이 빼앗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볼을 거의 뺏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더웨이는 역대급 가드로 이름을 남길만큼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아니다. 역대까지 갈 것도 없이 동시대 가드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현재도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적지않다. 드리블이라는 확실한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뚜렷한 캐릭터를 가지고있던 1번이기 때문이다. 작고 통통한 체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면서도 안정적인 드리블을 바탕으로 돌파 후 마무리가 좋았다. 특히 크로스 오버 드리블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별 베스트 드리블러를 언급할때 아이버슨의 이름도 빠지지 않는다. 하더웨이 못지않은 크로스 오버 장인이며 공과 한몸이 된듯한 드리블 스킬로 수많은 수비수들을 농락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조차 아이버슨의 드리블에 당한후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을 정도다. 아이버슨의 드리블이 무서운 점은 그가 가지고있는 개인기 및 슈팅능력과의 연계플레이가 누구보다도 좋았다는 사실이다.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실속에 더 중점을 둔 드리블 스킬에 스피드, 방향전환, 페인트 동작 등이 녹아들었던지라 전성기 시절 그가 마음먹고 공을 몰고 들어오면 제대로 막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현시대 최고의 드리블 마스터는 누구일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열에 아홉은 바로 이선수를 꼽는다. 바로 카이리 어빙이다.
이항범(42‧168cm) JBJ 바스켓볼 클럽 대표는 “1990년대 NBA에 열광했던 사람인지라 과거 레전드들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있는 편이다. 엇비슷하면 당시 선수들이 더 잘한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어빙만큼은 다르다. 역대 누구를 가져다대도 드리블만큼은 어빙 위에 둘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싶다. 아이버슨같은 경우 통통 튀는 리듬감있는 드리블에 삽시간에 상대의 중심을 흔들어버리는 크로스 오버가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드리블과 돌파, 드리블과 슈팅의 연계동작이 참 좋았다고 기억한다. 반면 어빙은 다른 플레이도 좋지만 그냥 그 드리블 자체로 놀랍다. 어찌 그렇게 낮고 유연하게 드리블을 이어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드리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는 말로 어빙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KBL 역대 최단신 지명자 출신으로도 유명한 이대표는 농구를 하는 내내 사이즈에 대한 아쉬움과 싸워야 했다. 그냥 작은 것도 아닌 평균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신체조건이었던지라 이런저런 한계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농구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갈고 닦았던 부분이 바로 드리블이다. 현재도 드리블 하나만큼은 자신있어한다. 그런 이대표 조차 ’어빙의 드리블을 보고있노라면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것 마냥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KBL기준 드리블 스킬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 전태풍(43‧179cm) 또한 어빙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미 버틀러의 승부사 기질과 백스토리도 좋아하고 스테판 커리의 놀라운 경기지배력도 좋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빙을 제일 좋아해요. 어빙은 마술사에요. 드리블의 수준이 달라요. 몸과 하나에요. 어빙 드리블보다가 다른 선수들보면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정도로 어빙은 특별한 드리블러에요. 공간이 좁아요. 수비가 많아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빙은 양손으로 낮게 드리블을 치면서 그냥 들어가요. 뺏을 수 없어요. 공이 바닥에 붙어다녀요. 설명이 필요없어요. 엄지척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빙은 실력에 비해 커리어나 타이틀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외적으로 사건사고가 많고 오롯히 농구에만 집중하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항범도 전태풍도 아쉽게 생각한다. 전태풍은 “어빙이 버틀러의 멘탈과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면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의 뒤를 이었을 것이다”고 확신했으며 이항범 또한 “지금도 팬이 많지만 개성을 조금만 내려놓고 승부에만 집중했다면 리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지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시즌 브루클린 네츠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로 둥지를 옮긴 어빙은 현재 FA자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름값에 비해 인기는 높지않은 분위기다. 사용법도 어렵고 계약기간내내 착실하게 뛰어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나는 달라졌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간 쌓아놓은 양치기소년 이미지가 너무 크다. 역대급 드리블러의 우울한 단면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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