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정끝별 시집 '모래는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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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곳을 찾아 해안가 절벽을 기어오르다 최후를 맞는 바다코끼리, 몸속이 쓰레기로 꽉 차 죽어서도 썩지 못하는 갈매기, 가뭄에 쫓겨 떼 지어 물웅덩이로 몰려드는 악어들까지.
시 창작과 평론을 병행하면서 독특한 상상력과 언어 감각으로 특유의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끝별이 새 시집 '모래는 뭐래'에서 그린 자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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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살 곳을 찾아 해안가 절벽을 기어오르다 최후를 맞는 바다코끼리, 몸속이 쓰레기로 꽉 차 죽어서도 썩지 못하는 갈매기, 가뭄에 쫓겨 떼 지어 물웅덩이로 몰려드는 악어들까지.
시 창작과 평론을 병행하면서 독특한 상상력과 언어 감각으로 특유의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끝별이 새 시집 '모래는 뭐래'에서 그린 자연의 모습이다.
등단 35년을 맞은 시인은 자신의 일곱번째 시집에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세계 곳곳의 자연이 감당하고 있는 죽음과 같은 현실을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했다.
"우리에 갇혀 있거나 우리에 실려 가거나 / 우리에 먹히거나 우리에 생매장당하는 더운 목숨들을 보면 / 우리가 너무 무서운 사람인 것 같다"('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이다. 인간인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동물과 자연을 '우리'에 가두고 매장하고 먹어 치운다.
시인은 그런 인간의 일원이지만 죽어가는 동물들 앞에서 공감하고 반성하는 존재다.
"목 짧은 내가 너무 많은 걸 삼키며 사는 것 같다"라는 깨달음에 이어 나오는 건 "남의 살을 삼키지 않고 / 남의 밥을 빼앗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이다.
시집 '모래는 뭐래'에는 이처럼 숨 쉬는 모든 존재에 대한 경외가 담긴 시들이 여러 편 수록됐다.
그런 경외 속에는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시시각각 스러져가는 동물들과 같은 운명을 인간 또한 피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자리한다.
지진과 태풍 등 기후재난이 수챗구멍의 역류하는 하수처럼 쏟아지는 "소멸의 풍경"은 탐욕스러운 인류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 인간마저 잃고 뼛속까지 이빨만 남아 / 제 이빨로 저마저 물어뜯어 모두의 끝을 보고 만다"('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에서)
이런 종말론적인 세계에서 시인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묵묵히 계속해서 시를 쓰는 일밖에 없다. 시집의 제목이 된 시 '모래는 뭐래?'가 그런 내용이다.
"모래는 뭘까?"하고 모래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붙잡으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질 뿐 답을 들을 수는 없다.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시인은 계속 시를 써야만 한다. "끝나지 않은 희망이 시"이고 시는 시인에게 종교라서 그렇다.
"근데 시인들도 시를 읽지 않는데 / 누가 시를 읽어줄까요? / 시간은 봐주겠죠!"('노시인과의 카톡'에서)
시간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그의 시를 좀 읽어줘야겠다.
창비. 148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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