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의 지혜’ 키신저가 꼽은 현대사를 만든 ‘6인의 히어로’[북리뷰]

2023. 5. 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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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키신저 리더십
헨리 키신저 지음│서종민 옮김│민음사
겸손 ·의지·평형 ·초월 등 추구
아데나워 · 드골 · 닉슨 · 사다트
리콴유 · 대처의 리더십 분석해
국가 안보·국제 평화 내다보는
거시적·전략적 리더십 있어야
헨리 키신저 ⓒJurgen Frank
아데나워(왼쪽부터), 드골, 닉슨, 사다트, 리콴유, 대처가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 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는 당대를 회고하며 ‘전략적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설파한다.

헨리 키신저는 20세기 현대사가 남긴 핵심적 지혜를 전할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로 100년을 살았다. 체화한 지식은 일종의 지혜를 낳는다. 나치를 피해 독일을 탈출한 청년기 고난이 낳은 신념, 최강대국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통찰, 노년기에도 학습과 저술을 그치지 않는 지적 호기심 등은 키신저에게 혼란한 현실을 꿰뚫고 핵심 문제를 파악할 힘을 주었다. ‘헨리 키신저 리더십’에서 그는 역사 전환기에 이른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짚어낸다. ‘전략적 리더십’이다.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키신저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세계 전략, 즉 국제 질서이다. 그는 나날이 격화하기만 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두 번째 30년 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전 세계를 휩쓴 분노와 살육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과 같은 위험 상황으로 인식한다. 핵무기와 함께 사이버 무기와 인공지능(AI)의 등장 등 기술 혁명은 강대국 충돌의 위험을 악화한다. 이러한 시대에 리더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줄 알아야 한다. 첫째, 국가 안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둘째, 국제적 평화 공존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이러한 거시적 질문에 답하려면 앞날을 내다보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리더십 위기의 극복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역사를 공부하게. 역사 속에는 국정 비결이 다 숨어 있다네.”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 키신저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처방을 현대사 속에서 찾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길 잃은 세상에서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프랑스의 샤를 드골, 미국의 리처드 닉슨,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싱가포르의 리콴유, 영국의 마거릿 대처 등은 현실을 냉정히 분석해 전략을 세우고, 강력한 전망을 제시했다.

키신저에 따르면, 이들은 용기를 품고 대담한 행동을 통해 국가와 사회를 변혁함으로써 정치와 사회의 질서를 다시 쓰고, 국익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에 헌신함으로써 번영한 미래를 창출했다. 역사적 격동의 시대에 이들에겐 이전엔 생각지 못했던 길을 연 창조적인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키신저의 시선은 철저히 미국 중심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모두 미국의 세계 전략, 즉 키신저 자신이 주도한 적 있는 대서양 동맹, 중동 정책, 아시아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이 단지 리더십 연구서가 아니라 일종의 회고 형태를 띠는 이유다.

아데나워는 겸손한 리더다. 몰락한 독일의 현실을 냉정히 수용해서 대서양 동맹에 독일을 정박하고, 라인의 기적과 독일 통일을 향한 도덕적 기반을 다졌다. 드골은 의지의 리더다. 중요한 시기마다 그는 고집과 결단을 무기 삼아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다. 1944년 독일 침략을 무찔러 프랑스를 되찾고, 1958년 알제리 전쟁 땐 내전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강하게 이끌어 헌법에 기반을 둔 번영과 통합의 길로 이끌었다.

닉슨은 평형을 추구했다. 미국 국내에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불명예를 저질렀으나, 국제 정치에서 그는 ‘균형에 기초한 질서’란 미국 리더십을 세계로 퍼뜨렸다. 소련과 협상을 통해 냉전의 정점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을 베트남 전쟁 수렁에서 빼냈으며 중국과 교류를 트고 중동 변화를 이끌 평화 정착 절차를 시작했다.

독립투사였던 사다트와 리콴유는 각각 초월과 우월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사다트는 3차 중동전쟁에서 패한 후 충격과 혼란에 빠진 이집트를 재건하고, 불구대천 원수인 이스라엘과 화해를 추진함으로써 안정과 평화를 지키려 했다. 리콴유는 적대적 이웃들로 둘러싸인 다민족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통합적 정체성을 불어넣음으로써 눈부신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념의 리더 대처는 과감한 경제개혁으로 병든 영국을 쇄신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미래를 만들 전략을 고안하는 수완, 숭고한 목표를 두고 사회를 움직이는 솜씨, 결점을 신속히 보완하는 태도이다. 모두 변변찮은 출신으로 인습에 도전해서 국익을 수호하고, 통념을 초월해 국가의 미래를 새로 썼다. 키신저는 리더십이 지적 능력과 결단, 불굴의 의지에만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책 내내 그는 역사와 철학에 기반한 인간 이해, 도덕적 자질을 갖춘 인격, 독서를 통해서 다져진 심층 문해력과 깊이 있는 사고를 강조한다. 우리에겐 과연 이러한 리더십의 지도자가 있을까. 604쪽, 3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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